秋潭 大宗師 舍利塔 碑文
스님의 法號는 秋潭이요, 法名은 純이며 俗姓은 密陽朴氏다, 1898년 9월 13일 咸鏡南道 咸興에서 父朴永淑公과 母坡平尹氏의 次男으로 출생하였다. 咸興公立中學校를 마치고 日本大正大學에서 佛敎哲學을 專攻한 뒤 還鄕하여 海東佛敎靑年會를 조직하여 靑年들을 敎化하는 한편 咸興私立一能學校를 설립 校長에 취임하였다. 일찍이 學窓時節부터 三‧一獨立運動에 가담하여 獄苦를 치른바 있었는데 이제 더욱 투철한 抗日意識을 고취하던차 重患으로 生死의 岐路에 섰을 때 咸興 歸州寺에서 修養精進을 하며 歸佛할 뜻을 확고히 하던 중 마침내 서울 三角山 奉國寺에 入山하여 晦明日昇法下에서 得度하니 世尊七十六代로 淸虛休靜 十三世法孫이된다. 金剛山 乾鳳寺에서 大敎科를 修了하고 禪理를 參究한 뒤 寂照庵에 住錫中 六‧二五 戰亂을 만나 金井山 梵魚寺 等地에서 修禪安居하며 佛敎淨化運動에 적극 參與하여 正法俱現에 앞장섰다. 佛敎再建을 위하여 曹溪宗憲 제정으로 統合宗을 발족하여 曹溪宗團의 淨化促進에 한 求心點이 되었다. 宗團公職으로는 總務院 初代敎務部長, 佛敎新聞主筆, 編輯委員, 中央宗會副議長, 法規委員, 監察委員, 元老등을 歷任하였고 世界佛敎指導者大會 때 韓國代表로 활약하였다. 그리고 三角山 寂照庵, 母岳山 金山寺, 鼎足山 傳燈寺, 俗離山 法住寺, 雪嶽山 新興寺, 逍遙山 自在庵 등 大小名刹의 住持로 佛法宣揚과 伽藍守護에 많은 業績을 남겼으며 특히 1964년 端午節에는 法相宗 宗刹인 法住寺에 彌勒佛像을 建立廻向하며 “항상 現在에서의 세로운 覺悟밑에 正法信心을 견고히 하라”고 그 碑文에 썼으니 永世토록 紀念될 大作佛事라 아니할 수 없다. 늘 門徒들에게 正直‧勇氣‧時間이 人間의 三大生命임을 說하며 尊敬과 理解와 사랑의 心性을 갖도록 강조하여 感化받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晩年에 法門集 『矛盾의 合理性』을 세상에 전하고 1978년 10월 26일 홀연 入寂하니 世壽 81이요 法臘 42였다. 曹溪宗 元老葬으로 茶毘하여 精修三業의 結晶體로 舍利 24顆를 거두어 이곳 逍遙山 眞修道場에 秋潭宗師의 舍利塔을 세운다.
佛紀 2526년(1982) 壬戌 10月 20日 五臺山人 呑虛 金宅成 謹撰
추담대종사 사리탑 비문
스님의 법호는 추담(秋潭)이요, 법명은 순(純)이며, 속성은 밀양 박씨다. 1898년 9월 13일 함경남도 함흥에서 부친 박영숙(朴永淑)과 모친 파평 윤씨의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함흥 공립중학교를 마치고 일본 대정대학(大正大學)에서 불교철학을 전공한 뒤 환향하여 해동 불교 청년회를 조직해 청년들을 교화하는 한편 함흥 사립 일능학교(一能學校)를 설립, 교장에 취임하였다. 일찍이 3.1 독립 운동에 가담하여 옥고를 치른 바 있는데 더욱 투철한 항일의식을 고취하던 차 중환으로 생사의 기로에 섰을 때, 함흥 귀주사(歸州寺)에 귀의할 뜻을 확고히 하던 중 끝내 서울 삼각산 봉국사에 입산하여 회명일승(晦明 日昇) 법하에서 득도하니, 세존 75대로 청허휴정 13세 법손이다.
금강산 건봉사에서 대교과를 수료하고 선리(禪理)를 참구한 뒤 적조암에 주석 중 6.25 전란을 만나 금정산 범어사 등에서 수선안거(修禪安居)하며 불교 정화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정법 구현에 앞장섰다. 불교 재건을 위하여 조계종헌(曹溪宗憲)의 제정으로 통합 종단을 발족시켰고 조계종단의 정화추진에 구심점이 되었다. 종단 공직으로는 총무원 초대 교무부장, 불교신문 주필ㆍ편집위원, 중앙종회 부의장, 법규위원, 감찰위원, 원로 등을 역임하였고 세계불교지도자대회 때 한국 대표로 활약하였다. 그리고 삼각산 적조암, 모악산 금산사, 속리산 법주사, 설악산 신흥사, 소요산 자재암 등 대소 명찰의 주지로 불법 선양과 가람 수호에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특히 1964년 단오절에는 법상종 종찰인 법주사에 미륵 불상을 건립 회향하면서 “항상 현재에서의 새로운 각오로 정법신심을 견고히 하라”고 하는 그 비문은 길이 기념이 될 대작 불사라 아니할 수 없다.
항상 문도들에게 ‘정직ㆍ용기ㆍ시간’이 인간의 삼대 생명임을 설하며, 존경과 이해와 사랑의 심성을 갖도록 강조하여 감화받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만년에 법문집 『모순의 합리성』을 세상에 전하고, 1978년 10월 26일에 입적하니 세수 81세요, 법랍 40세이다. 조계종 원로원장으로 다비하여 정수삼업(精修三業)의 결정체로 사리 24과를 수습하여 이곳 소요산 진수도량에 추담종사의 사리탑을 세운 것이다.
불기 2526년(1982) 임술 10월 20일 오대산인 탄허택성 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