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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허대종사 비문

 
呑虛 大宗師 舍利塔碑銘 幷書
五臺之山에 有上院하니 漢岩遠禪師가 居之하사 設禪關以辨決하시니 參學之士가 望崖而退者衆矣라 得一人하시니 曰成公이니 是爲呑虛和尙이라 師生有異徵하사 容若冠玉하고 聲若振金하니 父老가 咸謂爲大器하야 因名金鐸하니라 稍長하사 讀儒書에 晝夜彌勵하야 期必得乃已하시며 及入禪關에 密扣心要하사 習定均慧를 凡歷二十餘年하야 乃受漢巖之心印하시니라 然後에 潛心於經敎하고 又涉躐於老莊諸子百家之書하사 靡不該博하시니라 其行持也는 石中之玉이요 其端雅也는 春日之花요 其高尙也는 千仞之鳳이요 其超群也는 九皐之鶴이며 胸中洗落은 霽月之像이요 辯才無礙는 懸河之流라 能文能筆하고 尤長於易하며 祖門妙詮은 固所遊刃이시니 此其大略矣라 至於緖餘하야는 備諸行狀하니 不能盡述하노라 漢岩和尙이 因號師呑虛하시고 嘗謂諸人曰斯人也가 吾之阿難이라 吾何憂哉아하시고 遂任大事囑焉하시니라 噫라 師之高邁過人이 如此어늘 或有譏師攻乎外學하니 是豈知師哉아 法華에 云善說法者는 治世語言과 資生業等이 皆順正法이라하시며 華嚴에 亦云五地聖人이 善能通達世間之學하야 至於陰陽術數와 圖書印璽와 醫方辭賦히 靡不該練이라 然後에 可以涉俗利生이라하시니 師以間世之才로 出於後五百歲之後하사 莊嚴祖域也로다 師의 諱는 金鐸이요 法名은 宅成이니 一九一三年 癸丑 正月 十五日에 生于金堤郡萬頃이라 姓은 金氏니 父는 栗濟요 母는 崔氏라 年至二十二에 以書로 致問漢岩禪師하고 遂落髮하사 侍住上院하야 專修禪敎하시니라 其後에 住於月精하사 接引後進하시며 住錫靈隱하사 飜譯經敎하시고 又移居畿內大圓等處하사 出刊布敎하시니 緇白受化者가 多矣러라 所譯解者가 有多種하니 曰六祖壇經과 普照法語와 永嘉集과 書狀과 禪要와 都序와 節要와 楞嚴과 起信과 般若와 圓覺과 華嚴經論疏와 周易禪解와 老子道德經과 三敎平心論等也요 所著者는 佛若在焉等也라 其敍敎也圓하고 其見法也가 徹하며 其釋義也가 簡하고 其入觀也明이라 不虛騁不苟飾하야 無排斥之說하고 無胸臆之談하시니 實入禪之指南이며 敎門之木鐸也라 仍受宗正賞과 仁村文化賞과 與國民勳章等하니라 報齡은 七十一이요 法臘은 五十이라 癸亥 四月二十四日 酉時에 化於五臺山方山窟할새 時有一弟子하야 問師云호대 師今如如否닛가 師云如如也니라 此愚夫여 又一弟子가 問師云호대 人之在世가 是因緣法也니 師今世緣이 疑是盡也니다 請師下一句言하노니다 師云一切無言이니라 又云時今酉時否아 侍者가 答云酉時한대 師乃泊然而逝하시니라 四衆이 雲集하야 哀悼徧山하야 遂奉全身하야 葬于東崗之上하야 獲舍利十三顆하니 五色이 燦然하니라 門徒諸人이 囑余爲銘이어늘 余旣受師恩이 重矣라 辭不獲已하고遂爲之 銘曰 月不在指兮여  見月忘指요 道不在言兮여  得意遺言이라 本來如如兮여  不須苦問이요 一切無言兮여  何必煩答가 禪敎幷行兮여  言黙一如요 定慧雙修兮여  動靜不二라 五臺之山兮여  文殊妙道요 上院之境兮여  彌勒樓閣이로다 遠公深隱兮여  高蹈요 虛師가 透關兮여 密契로다 眞風兮未息이어니  何代兮乏人이리요 師之身兮여  鶴飛霄요 師之心兮여  月出雲이로다 靈隱兮啓途요  方山兮還駕로다 辯說能兮여  懸河注요 文筆玄兮여  幽鬼愁로다 譯傳兮報佛恩이요 敎訓兮勵後進이로다 緇白化兮여 多蒙이요  褒賞陳兮여 未洽이로다 觀生死如夢이어니  豈去來有朕이리요 噫라 師之現相兮여 物物全彰이요 師之收跡兮여  塔身無影이로다 乙丑(1985) 至月 日  呑虛門人 覺性 謹撰.

탄허 대종사 사리탑비 명과 서문
 오대산에 상원사(上院寺)가 있는데, 한암 중원(漢岩 重遠) 선사께서 주석하시며 선관(禪關)을 베풀어 변결(辯決)하심에 그의 높은 벼랑을 바라보고 물러가는 선승들이 많았다. 한 사람을 얻으니 그가 곧 성공(成公=宅成)으로서 탄허화상 이시다.
 선사께서 태어나 남다른 상서가 있었으며 얼굴은 관옥 같고 목소리는 금을 울린 듯하였다. 부친과 노인들이 모두 큰그릇이 될 것이라고 하여 금 목탁이라는 뜻으로 ‘금탁(金鐸)’이라고 이름지었다.
 조금 장성하여서는 유서(儒書)를 읽음에 주야로 더욱 힘쓰면서 반드시 그 뜻을 얻은 후에야 그만 두었으며, 선관(禪關)에 들어와서는 은밀히 마음의 요체(心要)를 참구하여 선정(禪定)과 지혜를 익히고 밝히기를 20여 년이 지나고야 이에 한암의 심법(心法)을 전수 받았다. 그런 후에 경교(經敎)에 마음을 두고, 또 다시 노장(老莊)과 제자백가의 서적을 섭렵하여 해박하게 통달하지 않는 바 없었다.
 스님의 행실과 몸가짐은 돌 가운데에 빛나는 옥과 같고, 스님의 단아함은 봄날의 꽃과 같고, 스님의 고상함은 천 길 높이 나는 봉황과 같았으며, 많은 사람 가운데 빼어난 풍모는 깊은 골짜기에서 노니는 고고한 학과도 같았으며, 마음은 그지없이 해맑아서 비개인 뒤 새초롬한 달과 같았으며, 막힘 없는 능란한 말솜씨는 하수를 거꾸로 달아놓은 것과 같았으며, 문장에 능하고 글씨에 능하였는데 더욱 『주역』에 뛰어났으며, 조사문중의 오묘한 이치는 본시 능란하였다.
 이것이 스님께서 살아오신 생애의 대략을 말함이고 자질구레한 일들은 행장에 모두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기록하지 않는다.
 한암선사께서 탄허라는 법호를 지어 주면서 대중들에게 “이 사람은 나의 아난(阿難)이다. 내 무엇을 걱정하겠는가?”라고 하고서 마침내 대사(大事)를 부촉하였다. 아! 스님의 고매한 인품은 이처럼 여느 사람보다도 훌륭하심에도 혹자는 스님이 외학(外學)에 능하였다고 비난하는 자가 있다. 이 어찌 참으로 스님을 아는 사람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법화경』에 이르기를 “설법을 잘하는 사람은 세상을 다스리는 말과 생업을 하는 사업이 모두 정법에 순응한다”고 하였으며 『화엄경』에서도 “오지(五地)의 성인은 세간의 학문을 잘 통달하나니 음양 술수『도서(圖書)』『인새(印璽)』『의방(醫方)』『사부(辭賦)』에 이르기까지 두루 통달하지 않은 바 없는 이후에 세속에 들어가 중생을 이롭게 할 수 있다”고 하셨다. 스님은 세간에서 보기 드문 재주로 후오백세(後五百歲)의 후에 태어나서 조사의 영역을 장엄하셨다.
 스님의 속명은 금택(金鐸)이요, 법명은 택성(宅成)이다. 1913년 계축 정월 15일에 김제군 만경에서 태어나셨으며, 성은 김씨다. 부친은 율제(栗濟)요 모친은 최씨이다. 스님의 나이 22세에 한암선사에게 편지를 올려 의문점을 묻고서 마침내 삭발하여 상원사에서 한암선사를 시봉하며 오로지 선교(禪敎)를 전수하셨다. 그 후 월정사에 주석하면서 후학을 가르쳤고 영은사(靈隱寺)에서 경교(經敎)를 번역하였으며, 또 서울 대원암 등지에 옮겨서 많은 책을 간행하고 포교하셨으니 승속간에 스님의 가르침을 받는 자가 많았다.
 번역서로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육조단경』‧『보조법어』‧『영가집』‧『서장』‧『도서』‧『선요』‧『절요』‧『능엄경』‧『기신론』‧『반야경』‧『원각경』‧『화엄경』의 논ㆍ소(論ㆍ疏)와 『주역선해』‧『노자도덕경』‧『발심삼론』‧『초심』‧『치문』등 백여 책이 있으며 법문집으로는 『부처님이 계신다면』ㆍ『피안으로 이끄는 사자후』 등등이 있다.
 그 가르침을 펴심은 원만하고 법을 보이심은 투철하시며, 교의를 해석하심은 간략하고 관(觀)에 들어가심은 명철하여 헛되이 치달리지 않고 구차히 꾸미지 않으며, 배척하는 말이 없고 억설의 말이 없으니, 실로 선(禪)에 들어갈 수 있는 지침이요 교문(敎門)의 목탁이시다. 인하여 종정상ㆍ인촌문화상‧ 국민훈장 등을 받으셨다. 세수 71세 법랍 50세 되던 계해년 4월 24일 유시에 오대산 방산굴(方山窟)에서 열반하셨다. 그때 어느 제자가 스님에게
“스님께서는 지금도 여여(如如)하십니까?” 라고 물으니,
스님은 “여여(如如)하다. 이 어리석은 사람아!”
또 한 제자가 묻기를 “사람이 세상에 사는 것이 인연법인데 오늘날 스님께서는 세간의 인연이 다한 것으로 생각되오니, 청컨대 스님께서는 한마디 말씀을 내려 주십시오”라고 청하자
“일체 말이 없다” 하시고 뒤이어서
“지금이 유시(酉時17~19시)냐?” 고 물으시니,
 제자가 “유시”라고 대답하자, 스님은 이에 담담히 열반하셨다. 사부 대중이 운집하여 애도하는 울음소리가 산에 울렸으며, 마침내 스님의 전신을 받들어 동쪽산 언덕 위에서 화장하여 사리 13과를 얻으니 오색이 영롱하였다.
 문도(門徒)들이 나에게 탑명을 부탁하기에 나는 스님에게 은혜를 받은 바 큼으로 이를 사양하지 못하고 마침내 명을 짓는 바이다.
 달은 손가락 끝에 있지 않으니
 달을 보면 손가락을 잊는 법
 도란 말에 잊지 않으니
 뜻을 얻으면 말을 잊어야 한다.
 본래 여여함이여!
 굳이 물을 것이 없으며
 일체가 말이 없음이여!
 번거로이 대답할 게 있을까?
 선(禪)과 교(敎)를 모두 행하심이여!
 언어와 침묵이 하나요
 선정과 지혜 둘 다 닦으심이여!
 움직임과 고요함이 둘이 아니다.
 오대의 산이여!
 문수의 오묘한 도요,
 상원의 경계여!
 미륵의 누각이로다.
 한암스님 깊이 숨어 고고하게 지냈고
 탄허스님 깨침 경지 은밀히 계합했네.
 참다운 도풍 끊이지 않으니
 어느 때인들 인재 없으랴!
 스님의 몸 학이 되어 하늘에 날고
 스님의 마음 달이 구름 뚫고 나오셨네.
 영은사에서 길을 열었고
 방산굴에서 돌아가셨네.
 능란하신 변재는 하수를 달아 놓은 듯
 현묘하신 문필은 귀신도 수심에 젖었네.
 번역과 전법으로 불은(佛恩)보답하고
 가르치심으로 후생을 격려하셨네.
 승속간에 교화를 입은 자 많고
 약간의 포상은 흡족하지 못하네.
 생사를 꿈과 같이 관(觀)하시니
 어찌 거래(去來)의 조짐이 있겠는가?
 아! 스님의 현상(現相)이여!
 물물(物物)에 모두 드러나고
 스님의 발자취 거두심이여!
 탑신에 그림자조차 없노라.
 을축 1985년 동짓달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