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팔만대장경 속에 무문자설(無問自說; 묻지 않는데 말하지 않음)이라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질문 없이 혼자 지껄이는 것은 없어요. 반드시 질문하는 사람의 뜻을 따라서 말이 있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해 달라고 강연회를 개최했단 말입니다. 그래서 이 강연이라는 게 그렇게 효과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환자가 어디가 아프다는 것을 들은 후에야 약 쓰는 사람이 약을 주게 되어 있는 것이지, 환자가 감기가 들었는지 몸살이 났는지 아무것도 모르고서 덮어놓고 약 쓰는 사람이 “내 약 써라” 한다면 우스운 일이 아니겠어요?

이와 같이 무문자설(無問自說)이라는 것은 싱거운 것이기 때문에, 이 강연회라는 것이 우리한테는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만일 단지 강연회라고 이렇게 여러분에게 설교를 한다면, 차라리 서울에 있는 강사나 포교사 스님 같은 이가 우리보다 백배, 천배 낫습니다. 그런 이를 모셔다가 하는 것이 나으리라 생각합니다.

나는 어떤 전문 지식인이 찾아와 󰡔팔만대장경󰡕을 갖다 놓고 무엇을 물어도 자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여러분들 앞에서 혼자 약 파는 사람 모양으로 지껄이는 것은 참 자신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기기화류(騏驥驊騮; 천리마)가 천리를 가는 말이기는 하나 그 말에게 쥐를 잡아 보라 할 것 같으면 오히려 병든 고양이를 못 당하는 것입니다. 또 밤에는 추호지말(秋毫之末)까지 다 볼 수 있지만 낮에는 눈을 부릅떠도 오히려 태산을 보지 못하는 것이 올빼미요, 충거(衝車)라는 기계는 진시황 당시 거대한 만리장성을 뚫는 기계였지만 작은 이[蝨]를 죽이는 데는 오히려 손톱 하나보다 못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 그 성품이 다르고, 기능이 다르고, 재주가 다 다른 거예요. 따라서 사실 김탄허는 이런 강연이 필요 없는 사람이올시다. 그러나 부산에 계시는 신도 여러분께서 일곱 번이나 서울을 올라 다니며 꼭 한번 이야기해 달라고 졸라대기에, 부득이 이렇게 내려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장시간을 이렇게 앉아 계시니까, 아마 무릎도 아프고 등도 쑤실 거예요. 그렇지만 기왕 여기까지 김탄허가 내려왔으니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릴 연제(演題)는, 저기 쓰여 있는 제목대로 ‘불교’입니다. 불교라면 첫째, 교(敎)와 선(禪)이 어떠하다는 것, 둘째, 지(知)와 각(覺)이 어떠하다는 것, 셋째, 술(術)과 도(道)가 어떠하다는 것, 넷째 충효일치관(忠孝一致觀)과 생사일여관(生死一如觀)이 어떠하다는 것을 말씀드려야 되겠고, 그 다음에 결론으로 동·서학(東·西學)을 비교해서 간략히 말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