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난이 닥칠 것을 예지로 간파한 인물들
우리 조상들 중에는 대국난이 닥쳐올 것을 예견한 선지자가 많았다. 대표적인 인물이 임진왜란 때 이토정李土亭이나 남사고南師古와 같은 철인들이다. 이들 말고도 정치 지도자 중에 이율곡 선생 같은 분들이 있는데, 이들은 국운을 미리 내다보고 대책을 세웠다.
임진왜란 이전 기록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훌륭한 인재들이 무수히 많았으며, 그들은 자신의 예지 본능으로 닥쳐 올 국란을 예견하고 그 대책에 부심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조정은 당쟁으로 주전파主戰派와 화의파和議派로 갈라져 국론이 분열되어 있었다. 그런 중에도 정치적․군사적 대비책을 서둘러 세워야 한다는 정치 지도자나 철인들이 많이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로 조선 중기의 학자, 남사고를 들 수 있다. 그는 강원도 태생으로 풍수․천문․복서卜筮․상법相法 할 것 없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비법을 모두 통달한 사람이었다. 그가 예견한 내용 중 맞지 않은 것이 없었는데, 명종 말년에 그는 다음과 같은 예언을 했다.
“머지않아 조정에는 당파가 생기겠고, 또 오래지 않아 왜변倭變이 일어나리라. 그런데 만약 진년辰年에 일어나면 오히려 구할 길이 있지만 사년巳年에 일어나면 구하기 어려우리라. 사직동에 왕기王氣가 있으니, 마땅히 나라를 태평케 할 임금이 거기서 나오리라.”
남사고의 예언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조정에는 을해년乙亥年부터 당파가 생겼고, 왜란은 임진년壬辰年에 일어났으며, 조선 제14대 왕 선조는 사직동 잠저潛邸에서 들어와 대통大統을 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단순한 예언과는 달리, 당시 나라의 지도자 가운데 대조적인 행보를 보인 두 사람의 일화를 통해 예지의 근거를 좀 더 살펴볼 수 있다.
선조 때 화의파和議派로서 영의정이었던 유성룡보다 앞서 영의정을 지낸 동고東皐 대감이란 인물이 있었다. 그는 왜란 전에 자리에서 물러나 하야下野했다. 이토정 등과 교분이 두터웠는데, 그 자신도 역학 등의 전통 학문에 밝아 왜란이 닥쳐올 것을 예지하고 있었다.
하야 후에 동고 대감은 자기 집 청지기 딸을 중매해서 어느 거지[異人]와 혼인시켰다. 동고 대감이 그 거지를 눈여겨본 것은 자신의 유지有志를 친아들보다 더 잘 받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가 오래지 않아 세상을 떠나면서 두 아들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했다.
“내가 죽은 뒤에는 청지기 딸의 남편[異人] 말에 무조건 따르라.”
동고 대감이 죽자 청지기 딸의 남편은 몇 차례에 걸쳐 동고 대감의 두 아들에게 재산을 요구했다. 그들은 괘씸하게 여겼지만, 아버지의 유언을 어길 수 없어 전 재산을 대부분 내주었다. 그러나 그 재산을 어디에 쓰는지는 도무지 알지를 못했다.
그러던 중 왜란이 일어났다. 이때 청지기 딸의 남편이 나타나 동고 대감의 두 아들에게 말했다.
“피난을 떠나시는 게 좋겠습니다.”
동고 대감의 두 아들은 그의 말을 무조건 따르라던 아버지의 유언이 떠올라 어쩔 수 없이 그를 따라 피난을 갔는데, 지금의 청송이었다. 그곳에 도착한 동고 대감의 두 아들은 깜짝 놀랐다. 청지기 딸의 남편은 두 아들이 전에 기거하던 집과 똑같은 집을 장만해 놓고, 전답도 똑같은 면적으로 준비해 놓았던 것이다.
이 일화에서 앞날을 내다본 동고 대감의 예지력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닥쳐올 국란을 알면서도 국가와 백성을 위해 나라의 위기에 대처하는 대책을 내놓기는커녕 오직 일족의 호신護身만을 염려하여 이와 같이 행동했다는 점이다. 그가 임금을 위해서 한 일이라고는 지금 자하문 근처의 성벽에 비상구 하나를 더 만들어 선조가 그 문을 통하여 피난길에 오르도록 했던 것밖에 없다.
이와는 대조적인 인물이 율곡 이이다. 그는 십만양병설을 주장하다가 당쟁으로 쫓겨났다. 그는 정치 지도자로서의 경륜뿐만 아니라 역학에도 밝아, 닥쳐올 대란을 미리 알고 십만양병설을 주장했으나 끝내는 소인들의 어리석은 반격으로 야인野人이 되었다.
그 후 율곡 이이는 임진강 연안에 정자를 지어 놓았다. 이 또한 앞날을 내다본 일이었다. 선조가 의주 피난길에 올랐을 당시 임진강 연안에 이르러 어둠 때문에 지척을 분간하지 못할 때 이 정자에 불을 질러 길을 밝히고 강을 무사히 건널 수 있게 했다.
율곡 이이는 대란을 예견하고 미리 난에 대처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했다. 자기의 안위는 아랑곳없이 자신의 직위를 걸고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또한 비록 난을 피할 수는 없더라도 위기의 순간에 선조가 목숨을 구할 수 있도록 차선의 준비까지도 해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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