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학의 가르침, 누구나 성불할 수 있다

기독교의 가장 큰 특성은 신성과 인간성을 구분한 것이다. 하느님과 인간으로 나누어, 하느님은 창조주, 인간은 피조물이라는 관계를 설정해 놓고 인간과 신성 사이에는 무한한 질적 차이를 두고 있다.

그런데 예수님을 통해서 인간성 회복이라는 희망을 갖게 해준 것이다. 여기서 기독교의 성부聖父․성신聖神․성자聖子의 삼위일체설은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 사후에 그 제자들이 진리를 표현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사용한 것이다.

예수님이 무엇 때문에 인류의 구세주일 수 있었는가를 냉철하게 규명해 본다면 바로 삼위일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인 성자가 성부 자리, 성신 자리와 일체가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모든 인간의 성인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불교에는 삼위일체라는 말은 없지만 이와 유사한 의미를 가진 용어가 많다. 법法․보報․화化 삼신三身으로 이 셋을 하나로 보는 것이다. 법신法身이 성부의 자리, 보신報身은 성신 자리, 화신化身인 석가모니불이 성자 자리다. 다시 말해서 천강千江에 비치는 그림자 달이 화신이라면 달 광명은 보신이며 하늘에 있는 달은 법신이다.

그렇기 때문에 49년간 법을 설한 석가모니는 화신인 그림자 몸이다. 교리적으로는 같은 부처지만 최초에 우주관․인생관을 타파해서 설한 화엄학은 법신의 소설所說이요, 무지한 대중을 위해 평생 설하신 화엄학을 부연한 팔만대장경은 화신의 소설이라 할 수 있다.

《화엄경》에서는 모든 중생은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유교에서도 이와 같은 말을 하고 있다. 《맹자》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본성의 착함을 말할 때는 언제나 요순을 예로 들어 얘기하고, 결론으로 하시는 말씀이 사람은 누구나 요순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 구절은 범부도 성인이 될 수 있음을 말한다.

이와 비슷한 내용을 율곡 선생이 금강산 율봉 선사栗峯禪師를 만나서 서로 문답한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율곡 선생은 유교학자라 유교를 자랑하고, 율봉 선사는 불교학자라 불교를 자랑하다가 율봉 선사가 먼저 율곡 선생에게 물었다.

“우리 불교에는 ‘중생의 마음이 곧 부처[卽心卽佛]’라는 말이 있는데 유교에도 그런 말이 있소?”

율곡 선생이 답했다.

“물론 있지요. 《맹자》의 도성선道性善장이 있습니다.”

그러자 율봉 선사가 다시 물었다.

“우리 불교는 ‘색(色; 우주 만유의 모양 있는 것)도 아니고, 공(空; 모양이 끊어진 것)도 아니다. 색이 즉 공이요, 공이 즉 색이다. 모양이 끊어진 것이 곧 모양 있는 것이고 모양 있는 것이 곧 모양 끊어진 것이다[非色非空, 空卽是色, 色卽是空]. 공과 색이 둘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는데, 유교에도 이런 말이 있습니까?”

율곡 선생이 《시전詩傳》을 인용해 답하였다.

솔개는 하늘에서 날고

고기는 못에서 뛴다.

“이것이 바로 불교의 비색비공과 같은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에 율봉 선사가 율곡 선생에게 시를 지어 답례하였다.

고기가 못에서 뛰고 솔개가 하늘에서 나는 것이 위아래가 같으니,

이것이 색도 아니고 또한 공도 아닌 소식이라.

등한等閒히 한번 웃고 신세를 돌아보니,

기우는 햇살이 일만 나무 가운데 홀로 섰도다.

그러면서 율곡 선생을 참으로 대학자라고 칭찬했다.

말세라도 정신을 차리면 도에 이른다

불교는 본연의 가르침인 대승 교리로 나가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불교는 그렇지를 못하고 소승적 기복祈福에만 치우쳐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복祈福으로만 흐른다는 것은 대개 마음이 약한 사람들이 종교를 믿을 때 나오게 되는 현상이다. 이러한 측면은 어느 종교에서나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가 부활해서 구원할 때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는 하늘에 올라갈 사다리가 없다고 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마음 약한 중생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아이쿠, 내가 영원히 살려면 믿어야 되겠구나.’

예수의 근본 정신은 허심자수복虛心者受福, 즉 마음을 비우는 자가 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또 “네가 돌이켜서 동자童子가 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도 했다.

여기서 동자가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동자란 천진난만한 어린애를 말하는데, 어린애의 마음은 바로 성인의 마음과 같기 때문이다. 성인의 마음은 곧 그 순간의 마음, 즉 앞뒤가 다 끊어진 마음을 갖고 사는 사람이다. 도를 통한 사람도 그와 같다.

그런데 이러한 예수님 말씀의 근본정신을 모르고, 예수가 구원해 준다고 하니 자기 스스로 구원할 생각은 않고 예수만 부르며 의지하려고 한다. 이것 또한 종교의 기복적인 경향이라 하겠다.

불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칠성각에 기도하며 “아들 낳게 해달라”, “남편 출세시켜 달라” 하는 것 등이 모두 기복이다. 그러나 몽매한 중생을 하루아침에 도의 자리에까지 끌어올릴 수가 없으니, 신심을 키우기 위한 방편으로 기복은 어느 종교에서나 의도된다.

다만 문제는, 기복에만 치우치고 여기에 머무는 경향이며, 여기서 마땅히 벗어나야 한다. 청정한 자기 마음의 본체를 밝혀 의타依他를 정화하고 자기해탈과 이타행利他行을 이루는 것이 올바른 깨달음의 길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대승적 입장이다.

대체적으로 어느 종교나 내부적으로 분규가 없는 데가 드문 것 같지만, 특히 대중들에게는 불교가 마치 싸우는 종교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현재 한국 불교계는 19개의 종단으로 나누어져 있고, 그중 몇몇 종단은 분규가 끊이질 않고 있다.

본래 조상은 하나인데 거기서 몇 십대가 지나고 나면 그 후손들이 자기 조상을 망각하게 되는 것이다. 시대의 조류를 따라서 종단도 어쩔 수 없이 분파分派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아들 삼형제를 두었다면 장성해서 분가를 하게 되는데 첫째 아들은 무엇하고, 둘째 아들은 무엇하고, 셋째 아들은 무엇을 한다는 것 자체가 벌써 세 종파가 아닌가. 종교의 분파도 이와 마찬가지다.

부처님은 일찍이 오오백세를 가지고 예언하셨다. 기독교 《성경》의 말씀을 빌린다면 ‘말세’인 것이다. 유교학의 소강절邵康節이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에 시대의 조류를 평해 놓았는데, 삼황三皇․오제五帝․삼왕三王․오패五覇․이적夷狄․금수禽獸라고 했다. 삼황은 천황씨天皇氏․지황씨地皇氏․인황씨人皇氏이며, 오제는 복희伏羲․신농神農․황제黃帝․요堯․순舜이며, 삼왕은 우禹․탕湯․문무文武이며, 오패는 진목공秦穆公․진문공晉文公․제환공齊桓公․초장왕楚莊王․송양왕宋襄王이다. 오패 시대까지는 소강절이 살아생전에 직접 보았지만 오패 이후는 예언이다. 결국 이적운夷狄運은 청조淸朝가 된다.

청 태조淸太祖가 등극한 후에 명나라 선비들이 푯말을 붙이기를 “오랑캐는 백년운百年運이 없다胡無百年之運”고 했다. 이 말은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신하들이 푯말 붙인 선비들을 잡아 죽이려고 하자, 청 태조가 그렇게 하지 말고 그 푯말 위에 ‘적덕누인積德累仁’이라고 4자씩 더 써넣으라고 했다. 그러면 이 구절은 ‘덕을 쌓고 인을 쌓으면 어찌 백년의 운이 없으랴[積德累仁 胡無百年之運]’가 되는 것이다.

그러자 그 푯말을 붙인 사람들 스스로가 푯말을 떼어 버렸다. 청 태조 이후에 성군이 대대로 나오게 되었고, 청조는 3백 년이나 유지되었다. 청조의 이적운이 지나고 지금은 금수운禽獸運 시대다. 유학에서 봐도 금수운, 불교로서도 투쟁뇌고의 시대鬪爭牢固時代가 지났고, 이제는 《성경》에서 말하는 ‘말세’라고 하니 어찌 다툼이 없겠는가.

그러나 아무리 말세라고 할지라도 누구든지, 아니 몇 사람이라도 정신을 차리면 그 종교의 운명은 살아 있을 것이며, 그런 사람이 없으면 그 종교의 운명도 쇠할 수밖에 없다.

이 말은 속수무책으로 깨달은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라는 말이 아니다. 나 자신부터 도道를 닦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