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미래를 밤새워 고민하는 이들의 말에 귀 기울여라
1970년대를 가리켜 사람들은 급격한 변화와 발전의 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냉정하게 따져 보면 과연 무엇이 발전했다는 말인가. 수출이 늘어나고, 눈 뜨고 나면 수십 개의 대형 공장들이 들어서고, 쌀밥에 고깃국을 먹게 되고, 우아하고 세련된 옷을 입는다고 과연 발전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 발전이니 진보니 하는 말을 붙이기엔 좀 씁쓸하다.
예전에 비해 먹고 살기가 좋아졌다고 해서 사람이 살기 좋아진 것은 아니다. 과학의 진보와 경제의 발전으로 인해 기계의 노예가 되고 돈의 노예가 된 채 오히려 자신을 상실하고 무기력해진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극도의 정신적 스트레스와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으로 윤리와 도덕, 종교와 진리를 외면한 채 혼미한 상태에 빠져 있는 사회를 과연 발전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산업사회로 빠르게 진입하면서 경제 사정은 과거에 비해 월등히 나아졌지만 윤리의 근간을 이루는 도덕은 이미 땅에 떨어졌다고들 한다. 땅에 떨어진 정도가 아니다. 도덕은 서양의 아스팔트 길바닥에 떨어진 냄새나는 휴지가 되어 서로 속여야 사는 장사꾼의 구둣발에 짓밟힌다. 국민이야 어떻든 아랑곳없이 자기의 매명賣名과 명리名利를 위했던 지도자들의 입을 닦는 휴지조각으로 변했다.
정부는 언제인가 사회 정화를 제2경제라고 일컬었다. 제1경제는 돈벌이 하는 것을 의미한다. 제3경제는 인간이 돈으로만 살 수 없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필요한 윤리다. 윤리가 바로 서려면 철학이 필요하다. 철학은 제4경제고, 철학 위에 종교가 있다. 이런 까닭에 종교는 제5경제라 할 수 있다. 아무리 제1경제가 발전한다고 해도 제2경제, 제3경제, 제4경제, 제5경제가 발전하지 못한다면 큰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정치인 한 사람은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는다. 정치가 국민의 의사를 묵살하고 권력 쟁취에 휘말려 싸우는 것은 귀신 혓바닥 장난보다 못한 짓이다. 정치의 본질은 그렇게 더러운 곳에 있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교는 정치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종교의 본질은 이론도 아니요, 조직도 아니요, 권력도 아니다. 다만 실천이 수반된 인격 완성에 있다.
종교가 제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종교적 정화 작업이 급격히 일어나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종교 단독으로는 큰 수확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제부터라도 정치가들이 종교적 진리와 손잡고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른 정치를 펴야 할 것이다.
모두들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겪는 이 고통은 산고의 고통이다. 《주역》에 보면 한국은 ‘간방艮方’이다. ‘간艮’은 갓난아기요, 결실을 의미한다. 바로 어머니가 아기를 낳는 때의 진통이다. 살이 찢어지는 고통을 겪어야 아기를 낳듯이 우리나라 1980년대 이전은 고통이 있을 수밖에 없는 때다. 그러나 이것은 희망찬 아픔이다. 가까이서 지켜보면 한심스럽고 어수선하고 머리가 아플 지경이지만, 큰 안목으로 지켜보면 희망찬 미래를 엿볼 수 있다. 새 시대가 오기 위해서는 진통을 겪지 않을 수 없다. 이 고통이 지나면 우리의 숙원이던 남북통일의 서광도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생각으로 감지할 수 없는 새로운 차원의 세계가 도래할 것이다.
그래서 정치가의 역할이 막중하다. 그들의 손에 우리나라의 흥망성쇠가 달려 있다. 우선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낮은 차원의 행정에서부터 변혁을 가져와야 한다. 악착같이 받아내는 정책보다는 분배에 좀 더 신경을 쓰고, 사안私案보다는 공안公案을 추진해야 한다. 늙은이의 말과 젊은이의 말과 어린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되 그중 젊은이의 말을 좀 더 중시해야 한다. 돈벌이하는 기업가의 건의나 주장보다는 밤새워 고민하고 국가의 미래를 주시하는 학자, 철학자 그리고 종교가의 말을 우선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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