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보다 아는 것이 끊어진 각覺을 좇아야
서양 철학에서 학문적으로는 칸트가 소크라테스보다 한수 위에 있다고 한다. 칸트의 인식론認識論은 우주 만유의 인식 주체를 연구한 것으로 그는 인식 주체를 순수이성純粹理性이라고 했다. 이것은 순전純全하고 수연粹然한 이치理致에서 나온 것으로, 불교에서 말하는 불성에서 망상이 일어났다는 뜻이다.
여기서 순수이성비판이 나온 것이다. 우주 만유의 인식 주체가 순수이성임을 알았다면 그 앎에 그치지 말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고 해서 실천이성비판이 나온다. 그런데 칸트 철학의 결론에서는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서, 인식 경계가 인식 주체의 절대적 상반성相反性이 일체 위에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순수이성은 절대적으로 없는 것이고, 우주 만유의 인식 경계는 절대적으로 있는 것이다. 이것들은 정반대이지만 일체상에서 내포되었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동양 철학의 관점에서 칸트의 최종적인 결론은 뭔가 미흡하다. 우주 만유의 인식 경계가 순수이성에서 나왔다면 순수이성은 우주 만유의 모체다.
그런데 칸트는 순수이성이 우주 만유의 모체라는 결론에는 이르지 못한 것이다. 동양 철학에서는 우주 만유의 모체, 즉 모든 존재의 근원을 파악할 때 그 모체에서 일어난 우주 만유는 모체화되고 만다. 그러므로 “하나의 근본이 만 가지 다른 것이 되고, 만 가지 다른 것이 한 가지 근본이다”라고 하여 “우주 만물 하나하나가 각각 태극(우주의 핵심체)의 진리를 갖추었고 우주 전체를 통합해 보면 태극의 진리일 따름이다”라고 말한다.
흔히 세상 사람들은 “불교는 생활화가 안 됐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칸트의 철학이야말로 생활화가 안 된 대표적인 사례다. 한 번 생각해 보자. 칸트의 철학은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론에 불과하다. 이 우주 만유의 인식 경계의 모체가 순수이성이라면 이 우주 만유의 모체인 순수이성을 타파할 때 우주 만유가 그대로 순수이성화가 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이를테면 산을 대하면 산, 물을 대하면 물, 이것이 전부 순수이성화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칸트 사상에는 그러한 순수이성화 된 결론이 없다. 따라서 칸트 철학은 생활화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불교는 어떤가? 《법화경法華經》에 나오는 구절을 살펴보자.
“이 법이 법의 자리에 머무나니 세간사 그대로가 법이라.”
산을 보면 산 그대로가 진리이고, 물을 보면 물 그대로가 진리가 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똥 덩어리, 오줌 줄기까지도 그대로가 진리다. 이때 그것은 완전히 순수이성화가 된 것이다. 그것은 한 번 부정을 거친 긍정이다. 세간법世間法 그대로가 불법佛法이 된 것으로 거기서 다시 한 번 긍정하는 것이다.
만일 그런 부정을 통과한 긍정이 아니라 긍정의 긍정이 되면, 즉 망상이 우글우글한 것 위에서 세간법이 그대로 불법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통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여기 있는 콩 한 개는 세간법으로 긍정인데, 그 콩을 땅에 심으면 콩은 없어지고 마니 한 번 부정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서 싹이 나와서 줄기가 생기고 잎이 나서 새로운 콩이 다시 열리면 그 콩은 부정을 거친 긍정의 콩이 되니 앞의 씨앗 콩이 아닌, 완전히 다른 새로운 콩인 것이다.
따라서 긍정의 긍정으로서 콩이 아니라, 한 번 부정을 거친 긍정으로서 콩이다. 이렇게 부정을 거친 긍정 속에서는 우주 만법 그대로가 진리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살아 있는 진리다.
이것은 유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우주 만물 하나하나가 각각 태극의 진리를 갖추었다. 즉 태극은 우주가 생기기 전 면목으로, 여기에 물건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태극에서 나왔기 때문에 물건 그대로가 태극이다. 또 우주 전체를 통합해 보면 태극의 진리일 따름이다.
현상적으로 드러난 모든 것이 그대로 태극이라면 우주 전체가 태극이요, 그대로가 진리뿐이다. 한 번의 부정을 거쳐 태어난 긍정 자체가 그대로 진리가 되었을 뿐 아니라 이제는 그 모든 것이 진리 아닌 것이 없으니 그대로가 순수이성화 된 것이다.
반면 앞서 언급했던 칸트 철학은 그저 우주 만유의 인식 경계가 순수이성에서 나왔다고만 결론 내리고 있다. 이런 까닭에 칸트 철학은 생활화가 되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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