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만유가 있는 그대로 평등하다

종교 사상과 배치되는 사상이란 대개 물질을 제일로 보고 정신을 그 다음으로 보는 것이다. 물질을 제일로 보는 사상은 끝까지 물질 위에서 평등을 찾으려 한다. 《맹자》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물건이 가지런하지 않은 것은 물건의 실정(實情; 진리의 대명사)이다.”

이는 산은 높고, 물은 깊고, 따오기는 희고, 까마귀는 검고, 조리는 새고, 바가지는 새지 않는 그대로 각각 평등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물질 위에서 평등을 찾으려고 하니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마치 산을 깎아 바다를 메워야 하고, 따오기는 검은 물을 들여서 검게 만들어야 하며, 까마귀는 하얗게 만들어야 하고, 조리는 새니 꿰매서 새지 않게 해야 하며, 바가지는 새지 않으니 새도록 해야 한다는 식이다. 이런 식이라면 아무리 평등을 찾으려고 해도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종교적인 견지에서 평등을 찾는다면 정신을 제일로 보고 물질을 그 다음으로 보기 때문에, 예컨대 정신이 허공이라면 물질은 삼라만상이다. 허공은 진리를 비유한 것인데, 이렇게 모양이 끊어진 허공 속에서 평등을 찾기 때문에 산은 높은 대로 평등, 바다는 깊은 대로 평등, 따오기는 흰 대로 평등, 까마귀는 검은 대로 평등, 바가지는 새지 않는 대로 평등, 조리는 새는 대로 평등, 즉 우주 만유 전체가 있는 그대로 평등한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진정한 의미의 평등이다.

불교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예수님이나 유교의 공자님이나 어떤 성인이든지 이 평등을 찾는 도리는 정신을 제일로 보고 물질을 그 다음으로 여긴다. 다시 말하면 모양이 끊어진 허공에서 삼라만상의 있는 그대로, 길면 긴 대로, 짧으면 짧은 대로, 고우면 고운 대로, 추한 것은 추한 대로 평등하게 보는 것이다.

그런데 반종교적인 사상에서는 물질만 풍요하면 됐지 정신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정신을 부정한다. 물론 그것도 현실적인 측면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종교의 종宗을 풀이하면 ‘갓 관冠’ 밑에 ‘보일 시示’한 ‘관시冠示’다. 갓은 제일 꼭대기에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는 《예기禮記》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갓이 아무리 헌것이라 하더라도 발에다 쓰는 것이 아니다.”

즉 ‘관시’의 뜻은 제일 꼭대기 도리로서 보이는 것이다. 꼭대기 도리는 예수님이 보이신 성부 자리와 유교에서 보는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이라는 그 성性의 자리다. 성이나 도나 교敎나 세 글자가 궁극에서는 같은 것이다. 그런데 주자는 하늘이 명령한 것을 성性이라고 했으나, 주자 이전에 맹자의 학설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하는 것 없이 하는 것이 천天이고, 이루는 것 없이 이루는 것이 명命이다.”

이것을 보더라도 천명 그대로가 성의 자리, 즉 우주의 핵심체라고 할 수 있다. 그 성을 좇는 것, 즉 우주의 핵심체[根源]를 찾는 것을 도라고 한다. 그러므로 유교에서는 이 ‘성도교性道敎’ 세 자가 제일 꼭대기 진리를 나타낸 것이다.

불교에서는 법신法身 자리가 바로 ‘관시’다. 선문禪門에서는 향상일로向上一路라 해서 법신도 향하向下로 본다. 이렇게 가장 높은 진리, 즉 우주의 핵심체, 인생의 핵심체가 아니면 정치도 부패, 사회도 부패, 문화도 부패, 그 전부가 다 부패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있음으로써 정치, 문화, 사회 등의 질서가 그대로 유지될 수 있다.

교敎는 글자 그대로 선효후문先孝後文이다. ‘효도 효孝’ 변에 ‘글월 문文’으로 행동 중에는 효가 제일 으뜸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효는 백행百行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효도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형제간에 우애가 있고 어른을 공경하며 모든 사람을 사랑하겠는가. 불가능한 일이다. 그 근본이 어지러워서 지말枝末이 다스려질 수가 없다.

그러므로 종교란 우주와 인생의 핵심체인 최고의 진리를 보여서 행동을 먼저하고 학문은 뒤에 해야 한다.

이런 까닭에 반종교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아무리 반종교反宗敎 한다고 해도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만일 반종교를 한다고 할 것 같으면 자기가 자기를 부정하는 결과가 되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또 적극적으로 종교를 부정하던 사람이 종교인이 되면 그만큼 열렬한 신앙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