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바로 내 마음
보통 종교라고 하면 가장 먼저 초자연적이고 초인간적인 것을 떠올리거나 어떤 조직이나 시설에서 의식 행사를 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것을 떠나서 어떤 종교를 믿든지 모든 인간에게는 보편적인 종교심이 내재되어 있다. 물론 유물론자들인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종교는 아편’이라 하고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종교는 공포심으로부터 나온다’라고 정의하기도 하지만 인간에게 종교심은 부인할 수 없는, 하나의 보편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종교심에 대해 청담 스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적이 있다.
“불교나 기독교나 무엇이든 간에 종교는 내 마음이며, 내 마음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부처님 형상 앞에 예불을 올리고 절을 한다고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종교는 이런 식으로, 또는 부처님을 믿음으로써 병을 고칠 수 있고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믿으면 되는 것이지, 복잡하고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이는 종교가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간의 종교적 심성의 문제는 기독교에서는 인간과 신성, 불교는 불성과 인간성에 대한 관계로 함축된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종교적 심성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마음[心]은 성性과 정情을 합한 명사이다. 성이란 나의 한 생각이 일어나기 전, 즉 우주가 미분未分되기 전 상태를 말한다. 이것은 우리의 한 생각이 일어나기 전이나 몸이 나기 전이나 우주가 생기기 전이나 모두 똑같다. 우리가 흔히 마음의 본체인 성에 대해서 논하면서 중생이나 부처, 성인이나 범부가 모두 똑같다고 하는 것은 일체를 성의 자리에서 보았을 때를 말하는 것이지 무조건 똑같다는 의미가 아니다.
성이 마음의 본체라면 정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작용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작용은 무한하다. 철학적으로는 희로애락애오욕의 칠정이다. 그러나 성은 칠정이 일어나기 전의 면목이며, 이는 본래 언어나 문자로 표현할 수 없는 자리지만, 굳이 표현한다면 불교에서는 4덕四德이라고 한다.
부처의 마음자리에 갖춘 4덕에는 진상眞常, 진락眞樂, 진아眞我, 진정眞淨이 있다. 이를 유교에서는 인의예지仁義禮智라고 한다.
그런데 범부와 소승小乘에서는 이 4덕을 전도하여 본다. 이를테면 범부는 현상적으로 드러난 일체가 무상無常인데 그것을 변하지 않는 고정된 상常으로 본다. 즉 1백 년도 못 사는 육체를 가지고 천년 만년 살 것처럼 생각한다. 이것이 범부다. 무상을 상으로 보는 것이다.
또 세상이라는 것은 고정된 실체가 없기 때문에 고苦 덩어리인데 이것을 낙樂으로 보며, 이 세상 전체가 무상이기 때문에 나라고 할 것이 없는 무아無我인데 아我를 실체實體가 있는 것으로 본다. 또 이 세상은 전체가 부정不淨인데 청정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집착한다. 이것을 범부의 그릇된 견해, 즉 범부의 4도四倒라고 한다.
불교의 4덕인 진상․진락․진아․진정을 소승불교에서는 전체가 무상無常이고, 전체가 무락無樂이며, 전체가 무아無我이고, 전체를 무정無淨한 것으로 본다. 이 견해를 소승의 4전도四顚倒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범부는 형상으로 드러난 온갖 존재가 본래부터 그렇게 실재하는 것으로 보고 현실에 집착하여 4덕을 전도한다면, 소승은 현실을 부정함으로써 4전도가 되는 것이다.
진상 진리는 참으로 변함이 없으며, 진락 진리는 고苦가 없어 참으로 즐겁고, 진아 진리는 참으로 멸하지 않는 참나가 있고, 진정 진리는 참으로 깨끗한 것이 있다. 이것을 부처님께서는 4덕이라고 하셨다.
부처님의 4덕은 범부의 4도四倒와 소승의 4도를 떠나서 완전한 진상․진락․진아․진정이다. 범부는 성체性體가 혼연한 우주의 진면목, 시간․공간이 끊어진 이 마음의 본체를 알지 못하고서 밤낮 희로애락애오욕의 칠정에 끌려 다닌다. 이에 반해 성性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성인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마음은 성性과 정情, 즉 체용體用을 합한 것으로, 성은 본체고 정은 성에서 일어나는 작용이다. 이는 정 자리에서 보면 온갖 차이가 있어서 선한 것도 있고, 악한 것도 있고, 잘난 놈도 있고, 못난 놈도 있고, 긴 것도 있고, 짧은 것도 있고, 흰 것도 있고, 검은 것도 있다. 그러나 성 자리에서 보면 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분별, 득실, 시비가 다 끊어진다.
마음이란 이렇게 모든 것을 내포하는 총체적인 명사로, 마음자리에서 보면 마음은 성인의 마음, 범부의 마음, 악한 마음, 착한 마음 등의 여러 마음이 다 있어 온갖 것을 다 붙일 수 있다. 하지만 성 자리에는 선악, 시비의 분별이 붙지 않는다. 그것은 유교의 ‘지극히 착하다[至善]’와 불교의 ‘선악이 끊어지고, 시간․공간이 끊어진 허령불매虛靈不昧’한 자리다.
마음을 바다에 비유하면 마음에서 일어나는 작용인 칠정은 바다의 파도와 같다. 파도가 일어나는 데서 청탁이 갈라진다. 맑은 물은 사람에게 이익을 주지만 탁한 물은 배를 엎어서 사람을 죽이는 못된 작용을 한다. 그렇지만 젖[濕]는 성질 자체는 변함이 없다. 성인의 마음을 맑은 물이라 한다면, 범부의 마음은 탁한 물이다. 그러나 물이 맑다고 더 젖고 흐리다고 해서 덜 젖는 것이 아니다. 물의 ‘젖는’ 성性은 물의 청탁을 떠나서 물이 본래 갖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의 마음이나 범부의 마음이 똑같다고 하고 그 성 자리의 똑같은 원리를 깨달을 때 범부가 성인이 되는 것이다. 즉 물이 젖는다는 본래의 성품에서 본다면 하루 종일 바다에 바람이 불어 흙탕물이 튀어도 하나도 손해가 없다는 말이다. 밤낮 젖는 것인데 거기에 청탁이 어디에 붙겠는가. 젖는 성품 자체에는 청탁이 붙지 않는다.
불성佛性이라 할 때 ‘불佛’이라는 말은 ‘각覺’이라는 뜻이다. ‘각’은 ‘미迷’의 반대말로 한 생각이 일어난 것이 ‘미’라면 한 생각도 일어나는 곳이 없는, 줄곧 확연히 본 것을 ‘각’이라 한다. 예를 들면 바다에 바람이 일어난 것을 ‘미’라 할 수 있는데, 바닷바람이 일어났다는 것은 바다 자체를 ‘미迷했다’는 것이다. 본래 맑고 깨끗한 물인데 바람이 일어남으로써 물결이 일어나니 바다 본체를 잃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했다’는 말은 한 생각이 일어났다는 말이다.
그런데 ‘각’이라는 말은 한 생각 일어나는 당체가 본래 없는 것으로 보고 타파해 버린 것이다. 동서남북, 상하고금으로 아무리 찾아봐도 일어나는 자체가 없는데, 망상 일어나는 곳이 어디에 있겠는가.
부처님의 각을 ‘상각常覺’이라 한다. 항상 각覺해 있기 때문에 1백 년을 산다 해도 한 생각도 안 일으키고자 하면 안 일으킬 수 있고 하루를 산다 해도 하루 종일 생각을 일으키고자 하면 일으킬 수 있다.
이렇게 생각이 일어나고 안 일어남을 자유자재로 하니 부처님을 ‘각왕覺王’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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