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 문제를 해결한 선사들
화두話頭는 자성自性을 깨달아 가는 법이다. 이것을 움직일 수 없는 법령法令이라는 뜻에서 공안公案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어떤 것이 불법입니까?”
“삼 세근이니라[麻三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마른 똥막대기니라[乾屎橛].”
이렇게 대답한 도리는 팔만대장경을 다 살펴보아도 해결되지 않는다. 이 알 수 없는 것을 참구參究하는 것이 화두를 보는 공부다. 이것은 사람들이 나쁜 지견과 분별심이 많으므로 그것을 없애려고 말과 생각의 길이 끊긴 ‘본분本分의 말’을 드러내어 악지악각惡知惡覺을 깨뜨리게 된 것이다.
화두는 생사를 깨뜨리고 곧바로 대도大道를 성취하는 길이므로 반드시 본분 종사宗師를 만나 배워야 한다.
대혜 스님이 무자화두無字話頭하는 데 10가지 잘못된 길을 가려 말한 것이 있다. 이것은 무자화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참선 공부하는 데는 모두가 이를 알아야 한다.
참선하는 데 화두를 가져 참구參究하는 방법과 화두 없이 공부하는 법을 각각 간화선과 묵조선이라 한다.
그런데 어느 쪽이 더 우월한 방법이냐고 묻는 이가 있다. 우열은 없다. 근기에 따라 문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중국의 육조六祖 혜능 스님 법을 이은 5종宗 가운데 4종이 간화선이고 조동종曹洞宗만이 묵조선이다. 간화선을 중시하는 측에서는 묵조선이 얕은 공부라고 말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실제로 조동종에서도 수많은 조사가 나왔고, 교세도 일본에서 보면 당당하다. 방법을 가지고 힐난할 것이 아니다. 몸 바쳐서 착실하게 참구하는 것이 요긴한 것이다. 그렇게 할 때 반드시 깨달음[覺]의 문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제, 참선을 통해 깨달음의 문에 들어선 대표 조사들을 살펴보자.
남악회양 선사
육조 혜능 스님의 제자 남악회양 선사南嶽懷讓禪師가 숭산崇山에서 처음 왔을 때 일이다. 남악회양 스님이 육조 스님께 인사를 하니, 육조 스님께서 물었다.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이 물음에 회양 스님이 꽉 막혔다. 그러고서 오랫동안 뜻을 참구하였다. 8년 만에야 깨치고 다시 육조 스님을 찾아간 남악회양 선사가 말했다.
“이제 알았습니다.”
“어떻게 알았느냐?”
“설사 한 물건이라 하여도 맞지 않습니다.”
“도리어 닦아 증득證得할 것이 있느냐?”
“닦아 증득하는 도리는 없지 않사오나, 물들고 더럽히는 것은 없습니다.”
망상에 사로잡히는 일은 결코 없지만 힘을 키우는 도리가 없지 않다는 말이다.
이때 육조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물들려 해야 물들 수 없는 이 자리가 모든 부처님의 호념護念하시는 바다. 네가 이와 같고 나 또한 이와 같다.”
이리하여 남악회양 선사는 육조 스님의 인가印可를 받았다.
한암 선사
한암 선사漢岩禪師가 세납 아홉 살이 되던 무렵 집에서 《사략史略》을 읽을 때였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태고太古라 하는 가장 옛날, 천황씨天皇氏가 있었다.”
그러자 한암 선사가 물었다.
“천황씨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반고씨盤固氏가 있었느니라.”
한암 선사가 또 물었다.
“그렇다면 반고씨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이 물음에는 선생님도 대답을 못 하였다.
이 문제에 대하여 한암 선사는 의심이 풀리지 않아 깊은 숙제로 안고 지냈다. 스무 살까지 유학儒學을 공부했지만 숙제는 풀리지 않아 스물두 살에 금강산에 구경 갔다가 출가하였다.
금강산에 머물면서 신계사에서 경經 공부를 하는데, 하루는 어느 암자에 불이 나서 사람이 타 죽었다.
이 소문을 듣고 나니 세상살이가 아주 꿈같이 허망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경전 보는 것을 그만두고 경허鏡虛 스님을 찾아갔다. 경허 스님은 견성見性한 스님으로, 당대 최고의 조사祖師였다.
당시 해인사에 머무는데, 마침 경허 스님이 법상法床에 올라 법문을 하셨다.
“무릇 형상을 지닌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니, 만약 모든 상이 실상이 아님을 알면 곧 여래를 보리다.”
여기서 한암 선사는 확연히 눈이 열렸다. 아홉 살 때부터 품어 왔던 의심이 그때서야 확연히 풀리게 된 것이다.
경허 선사
경허 선사는 다 아는 바와 같이 근대 한국 불교의 선맥禪脈을 중흥시킨 조사다.
계룡산 동학사 강원講院에서 학인에게 경經을 가르치고 있던 어느 해, 경허 선사는 은사 스님을 찾아뵈러 길을 나섰다. 해가 저물었는데 머물 곳이 마땅치 않았다. 한창 유행병이 돌고 있던 터라 어느 집에 찾아들어 쉬고자 하여도 주인장은 유행병 때문에 재워 줄 수가 없다며 거절했다. 경허 선사는 열 집 넘게 돌아다녔지만 끝내 잘 곳을 얻지 못하고 바깥에서 밤을 새울 수밖에 없었다.
유행병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고, 집집마다 초상을 치르며 울고 몸부림치는 것을 목격한 경허 선사는 무상無常함이 뼈에 사무쳤다. 강원에 돌아온 경허 선사는 조실祖室에 홀로 앉아 《전등록傳燈錄》을 모두 뒤져보았지만 막히는 구절이 없었다. 막히는 구절을 찾아 그것을 참구하며 참선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다가 다음 공안에 이르러서 꽉 막혔다.
나귀의 일이 가기 전에
말의 일이 온다.
이때 옆방에서 어떤 처사가 젊은 스님에게 거침없이 법담法談을 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시주들의 정성들인 공양을 받아먹고서 공부 잘 못하면 죽어서 그 집의 소가 된다는데, 그렇게 되면 어쩔 테요?”
젊은 스님이 대꾸를 못하고 머뭇거리자, 처사가 말을 이었다.
“소가 되어도 콧구멍 없는 소가 되면 되지 않겠느냐고 왜 답을 못하시오?”
경허 스님이 옆방에서 이 말을 듣고, 종전에 ‘나귀의 일이 가기 전에 말의 일이 다가온다’는 공안에서 꽉 막혔던 것이 확연히 풀렸다. 이와 동시에 심지가 밝게 드러났다.
이때 경허 스님은 다음과 같은 게송偈頌을 지었다.
홀연히 콧구멍 없다는 소리를 듣고,
비로소 삼천대천세계가 내 집임을 깨달았네.
유월 연암산 아랫길에서
나 일없이 태평가를 부르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