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敎와 선禪, 불교를 이끄는 두 개의 바퀴
중국에 훤제煊帝라는 왕이 있었다. 하루는 꿈 풀이를 잘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훤제는 그가 얼마나 해몽을 잘하는지 시험해 보려고 한 가지 꿈을 지어 냈다. 만약 해몽가가 꿈 풀이를 억지로 할 것 같으면 혹세무민 죄를 덮어 씌워서 목을 칠 작정이었다.
“네가 꿈 풀이를 잘한다고 하니 묻겠다. 간밤 내 꿈에 궁전 처마의 기왓장 하나가 난조(鸞鳥; 봉황새 종류)가 되어 날아가는 꿈을 꾸었는데 이것은 무슨 꿈인가?”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해몽가가 대답했다.
“폐하, 큰일 났습니다. 지금 궁중에 참변이 일어났습니다.”
해몽가가 훤제의 꿈을 해몽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문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폐하, 아뢰옵니다.”
“무슨 일이냐?”
“지금 궁중에서 두 사람이 싸우다 한 사람이 죽었습니다.”
훤제는 기가 막혔다. 꾸며 낸 꿈으로 해몽가를 시험해 보려 한 것인데 어떻게 꾸며 낸 거짓 꿈까지 이렇게 잘 맞히는가. 훤제는 그만 놀라서 해몽가에게 솔직하게 자신의 계략을 털어놓았다.
“네가 해몽을 잘한다고 해서 한번 시험해 보기 위해 꿈을 거짓으로 지어낸 것인데, 어떻게 귀신같이 그 꿈이 잘 맞을 수 있단 말이냐?”
그러자 해몽가가 말했다.
“폐하, 꿈이란 정신이 노는 것입니다. 꿈속의 꿈만이 꿈이 아닙니다. 폐하가 한 생각을 일으키면 그것 또한 이미 꿈입니다. 한 생각이 일어나는 순간 꿈이 생겨나고, 꿈이 있으면 이 우주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우주의 주체는 무엇인가? 우주의 주체는 곧 우리의 한 생각이다. 만약 우리의 마음에서 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 몸뚱이는 송장에 불과하고, 이 우주 또한 공각(空殼; 곡식이나 열매 따위의 빈 껍질)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마음의 본체를 알게 되면 우리의 한 생각에서 생겨난 모든 지엽적인 문제에 대해서 더 이상 시비분별을 하지 않게 된다.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법을 하고 6년 고행을 통하여 우주관과 인생관을 타파한 것은 무엇인가? 결국은 부처님이 깨닫고 나서 최초로 3․7일간 설법하신 화엄학華嚴學의 도리다. 《화엄경》은 부처님의 깨달음 세계를 그대로 드러낸 법문이다.
이 《화엄경》은 바로 모든 존재의 세계를 4가지 영역으로 분류한 화엄종의 우주관인 사법계四法界를 밝힌 것으로, 여기에는 이법계理法界, 사법계事法界,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가 있다.
이법계는 모든 존재의 세계를 공空의 입장에서 말한 것이다. 이 우주 만유는 환幻의 세계, 즉 가상으로 존재하는 것이지 실재하는 세계가 아님을 일깨워 주는 관점이다. 공의 관점에서 볼 때 현상세계는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가 아니기 때문에 일체 우주를 공空한 것으로 본다. 이법계는 곧 진리법계이며, 법계는 진리의 대명사다. 사법계事法界는 우주 만유 그대로가 진리임을 설명한 것이다. 또한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는 이理와 사事가 걸림이 없는 법계, 다시 말해 공空과 유有가 둘이 아닌 세계다. 즉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다. 이것은 《반야심경般若心經》에 잘 나타나 있으며, 바로 이사무애의 세계다. 사사무애법계는 사事와 사事가 걸림이 없는 세계다. 실제로 이사무애법계까지는 우리가 인식할 수가 있지만, 사사무애법계는 보통 사람의 수준으로는 도저히 인식할 수 없는 경지다. 태산을 자기 콧구멍 속에 집어넣는데 콧구멍을 넓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태산을 작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콧구멍 속을 들락날락하면서도 걸림이 없다.
과연 보통 사람들이 이런 말을 믿겠는가? 사사무애의 경지는 오직 이 우주 만유가 일진법계화一眞法界化된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한 경지다.
부처님께서 이러한 진리를 설하셨으나 1백만 대중 가운데 한 사람도 알아듣는 이가 없어 결국 49년 동안 설법을 하시게 된 것이다. 49년간의 설법이 결국은 팔만대장경이 되었으니 굉장히 장엄한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 그 모든 설법은 화엄 세계로 데려가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부처님이 방편을 달리해서 49년간을 설법한 우주관과 인생관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 우주는 우리의 한 생각이며, 한 생각이 우주 만유의 핵심이다’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이것이 바로 교리다. 이처럼 교리는 우리가 얼마든지 배워서 알 수가 있고 생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禪은 무엇인가? 선은 부처님 마음인데, 이것은 배워서 체득되는 것이 아니다. 생각해서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본래 문답이 끊어진 자리인 이 우주가 일어나기 전, 우리 몸뚱이가 생기기 전 그리고 한 생각이 일어나기 전 자리를 말한다.
따라서 거기에 무슨 말을 붙일 것인가. 이것이 본래면목이다. 그러므로 깨달았다는 것은 깨달은 것이 끊어진 자리를 말한다. 만일 거기에 ‘깨달음’이란 말이 붙는다면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이다.
옛날 위앙종의 향엄 선사가 용맹 정진한 끝에 자신의 사형(師兄; 앙산 선사) 앞에 당당히 나타나서 자신 있게 말했다.
“제가 드디어 조사선을 깨쳤습니다.”
그러자 사형 앙산 선사가 물었다.
“그래? 그렇다면 어떻게 알았느냐?”
향엄 선사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작년 가난은 가난이 아니라
올해 가난이 비로소 가난이요,
작년에는 송곳 꽂을 땅도 없더니
올해엔 송곳마저 없도다.
이 말을 듣고 앙산 선사가 다시 말했다.
“여래선 정도는 본 것 같은데 아직 조사선은 꿈에서도 구경을 못한 것 같구나!”
향엄 선사는 분명 자신은 조사선을 보았다고 생각했으나 사형이 자기를 인정하지 않자 다시 3년을 용맹 정진하였다. 그러고 다시 와서는 앙산 선사에게 말했다.
“3년 전에 제가 조사선을 알았다고 한 것은 거짓이었고 이제야 바로 알았습니다.”
“그래? 그러면 어떻게 알았는지 한번 말해 보아라!”
나에게 한 기틀이 있사오니
눈을 깜빡이어 그것을 보여 드립니다.
그렇게 하여도 알지 못하신다면
따로이 “사미야!” 하고 사미승을 부르겠습니다.
여기서 사미沙彌는 어린 스님을 가리키는 말인데 “사미야!” 하고 부르겠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팔만대장경으로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겠는가.
이때 앙산 선사가 말했다.
“3년 전 네가 조사선을 알았다는 것은 잘못 안 것이고, 지금은 바로 알았군.”
이처럼 깨달음은 말과 아는 것이 끊어진 자리를 말한다. 만일 아무리 깨달았다 할지라도 말과 생각이 끊어지지 않았다면 아직 꼬리가 덜 떨어진 것이다. 이것을 선禪이라 한다. 바로 그 자리가 부처님의 마음자리다.
팔만대장경과 같은 교리는 우리가 배워서 알 수 있고 사고해서 얻을 수 있는 경지이지만, 부처님 마음자리인 선은 생각이 완전히 끊어져야만 비로소 거기에 합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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