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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4-05 15:43
시공이 끊어진 자리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3,243  

시공이 끊어진 자리

 

“녹야원에서 발제하에 이르기까지 49년간 법을 설했어도 한 글자도 설한 바가 없다.”

부처님이 49년 동안 횡야설수야설橫也說竪也說, 즉 혀가 닳도록 설법을 해놓고도 자신은 단 한 글자도 얘기한 바가 없다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이는 성性의 자리에서 하신 말씀이다.

성의 자리는 다양한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 유교에서는 ‘중中’이라고 한다. 중이라는 것은 복판을 가리키는 중이 아니다. 여기에 앉아서 보면 서쪽이 되고, 저기에서 앉아서 보면 동쪽이 되고, 이쪽에서 앉아서 보면 북쪽이 되고 저쪽에 앉아서 보면 남쪽이 되는 자리로,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중앙, 가운데라는 뜻이 아니다. 중앙의 중이 진중眞中이 될 수 없다. 서울이 우리나라의 중앙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충청도에서 보면 동쪽이고, 함경도에서 보면 남쪽이고, 강원도에서 보면 서쪽인데 어떻게 서울이 중앙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중’이란 시간과 공간이 끊어진 자리다. 이를 《중용中庸》에서는 “한 생각 일어나기 전을 중이다”라고 하고, 동시에 “중이란 천하의 근본, 우주의 핵심체다”라고 말하고 있다.

또 기독교에서 ‘하나님’이라는 것도 시공이 끊어진 자리다. 우주는 시간과 공간을 의미하는데, 시간과 공간이 나기 전, 우주가 생기기 전에 앉으신 분이 누구겠는가. 그분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우주 창조주인 하나님인데, 기독교적 표현으로 말한다면 그분이 시간과 공간을 만든 것이다.

따라서 성의 자리에서 본다면 모두가 그 본체를 가지고 있으므로 누구나 양보할 것이 하나도 없다. 우리가 예수님, 부처님, 공자님과 같은 성인에게 양보할 것이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성은 성인이나 범부나 모두 똑같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범부는 성의 자리를 ‘미迷’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못난 놈 노릇을 하는 것일 뿐이다. 성인들은 다 똑같은 존재임을 한결 같이 가르쳤다. 이러한 좋은 예는 기독교 《성경》의 산상수훈 편에 잘 표현되어 있다. 마음을 비우는 자가 복을 받는다고 하지 않는가. 마음을 비우는 자가 바로 성의 자리를 각파하여 시공이 끊어진 자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