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일여관에는 두려움이 없다

인도를 가보니, 불교 모국母國이란 곳에서 스님이란 볼 수 없고 불교는 황무지가 되어 있었다. 부처님 나신 부다가야에 가서야 겨우 인도 스님 한 사람을 만나 하루 저녁 대담을 해봤지만, 불교 지식이 너무나 단편적인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슬람교와 힌두교의 집정을 거치면서 인도의 불교는 사멸했고, 불적佛蹟도 거의 파괴된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인도의 불교관은 이미 변질된 지 오래다. 모 대학의 철학교수 한 분을 만났을 때 그는 내게 다음과 같이 반문할 정도였다.

“불타의 정신은 힌두교의 일부분이 아니겠습니까?”

그럴 만도 한 것이, 중국의 현장玄奘 법사가 17년간 수학했고, 신라의 혜초慧超 스님이 입학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던 나란타 대학이 당시 8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였는데, 불에 타 없어지고 지금은 폐허만 남아 있다. 당시 6개월 동안이나 불에 탔기 때문에 지금 현존하는 장경藏經은 우리의 한문 장경인 팔만대장경에 비하면 만 분의 1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지금처럼 쇠퇴해질 수밖에 더 있겠는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다음에 좀 나은 것이 서장어西藏語인데, 이것 또한 한문 장경의 백 분의 1밖에 안 된다고 한다.

그러니 이제는 세계에서 우리의 한문 장경이 최상의 불경원전佛經原典이 되어 버린 셈이다. 게다가 한문 장경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곳도 한국뿐이다. 중국은 중공中共이 되어 이야기할 필요도 없는 처지가 되었고, 일본은 서구적 사고방식으로 동양 사상을 연구하는 폐단이 있어 한문 원전을 보는 데 미흡한 점이 많다. 결국 동양식 사고방식을 가지고 온전히 한문 원전을 풀이할 수 있는 사람은 한국인밖에 없다는 말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어느 다른 나라보다도 불교의 진수에 있어서, 교리 면으로나 선禪 사상 면으로나 다 앞서 갖추고 있다. 이미 인도에는 불교가 없어진 지경인 바, 말하자면 장손이 끊기면 지손支孫이 대신 가업을 이끌어야 하는 법인데, 과연 대를 이을 만한 곳이 어디겠는가. 일본, 중국 모두 아니다. 불교 장경의 보유가 으뜸인 한국뿐이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세계 불교의 새로운 종주국이 될 수밖에 없다.

인도, 동남아 문화권은 거의 다 불교 숭상국崇尙國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가 다 후진국이 되었다. 그래서 아마 ‘불교 숭상국은 후진국이다’ 하는 소리가 나온 듯한데, 사실 이것은 틀린 말이다. 한 나라가 망하고 흥함은 종교로 인한 국민정신과 정치 지도력에 달려 있는 것이지, 종교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불교 숭상국인 일본을 들 수 있다.

그렇다면 일본은 어떻게 부흥할 수 있었을까? 나라도 작고 자원도 없는 섬나라이면서도 태평양전쟁 때 세계 3대 강국에 들었고, 패망 후에도 4대 강국에 들고 있다.

결국 그들은 불교 정신을 잘 활용한 덕분에 오늘날과 같은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태평양전쟁 당시 그들은 선검일여禪劍一如 정신을 강조했다. 즉 참선하는 정신과 칼 쓰는 정신을 하나로 훈련시켰던 것이다. 선禪이란, 잡념이 하나라도 붙어서는 안 된다. 잡념은 망상일 뿐이다. 도를 열 번 통했다 해도 통했다는 생각이 붙으면 이미 도가 아니다. 군인이 칼을 쓸 때에도 앞뒤에 이럴까 저럴까 주저하는 생각이 있으면 칼을 쓸 수가 없다. 일본 사람들은 불교의 선禪 정신을 칼 쓰는 데 주입시켰던 것이다. 이런 까닭에 그들의 군대가 막강할 수 있었고,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불교 정신을 잘 이용했던 때는 신라시대로, 당시 불국사에선 4천여 명의 사대부중을 함께 모여 지내게 하고, 의상 대사를 모셔다 《화엄경》으로 국민 정신을 지도했으며, 원효 대사는 천성산(양산 통도사 내원암)에서 매년 1천여 명씩 제자를 길러 냈다. 그처럼 신라는 불교 정신으로 신라 국민을 지도하여 마침내는 삼국통일을 이룩해 냈다.

그러면 도대체 불교 정신에 무엇이 깃들어 있기에 그럴 수 있었을까? 바로 불교의 생사일여관生死一如觀 정신이다. 죽고 사는 것이 하나, 즉 생사가 둘이 아니라는 정신만큼 강한 것은 없다. 죽고 사는 문제가 하나라면 과연 무엇이 겁이 나겠는가.

이 몸뚱이마저 버릴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강한 것은 없을 것이다. 이 단계는 망상을 끊고 도道 자리에 든 것이나 다를 게 없는 경지이기 때문이다.

이제 결론을 내린다면 불교국佛敎國일지라도 불교의 정신을 알맞게 잘 응용할 줄 아는 나라는 발전하고, 이를 응용하지 못한 나라는 후진국이 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조국 통일이다. 만대의 자손에게 통일된 조국을 물려 줘야 할 입장에서 국민적 자각을 어떻게 세우느냐가 관건이라고 하겠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꾸준한 경제 성장으로 중진국 대열에 섰고, 선진국 대열에 설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 그러나 급속한 경제 성장만큼 국민 정신의 계발이 뒤따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결과 배금사상, 낭비, 사치풍조 또는 청소년 문제 등등의 사회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좋은 처방에는 무엇이 있을까?

정신을 첫 번째로 삼고, 물질을 그 다음으로 삼아 정신과 물질이 조화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인간은 좀 더 인간다워지고 사회는 좀 더 정화될 것이다.

요즘 사람들이 서양의 물질문명을 좇아가다 보니 사고방식마저 그들의 것을 답습하려는 데서 여러 가지 폐단이 생기고 있다.

서양인은 아이를 키울 때 다음과 같이 말한다고 한다.

“너는 장차 커서 일류 기술자가 되어라. 그럴 수 없으면 일류 예술가가 되어라. 아니면 일류 종교가가 되어라.”

그러나 동양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가장 훌륭한 사람은 종교인, 도덕가가 되는 것이고, 그 다음이 예술가 그리고 과학자나 기술자가 되는 것이다.”

동양 사람이나 서양 사람이나 바라는 것은 같지만 순서는 정반대라 하겠다. 서양인의 사고방식은 외본내말外本內末, 즉 근본을 밖으로 내버리고 지말枝末을 안에 두는 것이다. 그러나 동양 사상은 다르다.

“한 근본이 우주 만유요, 우주 만유가 한 근본이다[一本萬殊 萬殊一本].”

따라서 현실적 조화를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도덕뿐만 아니라 종교적 가르침이 필요하다. 또한 종교적 가르침을 실천할 줄 알 때 생활에서 변화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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