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바로 서지 않고서 누구를 선도하겠는가

요즘 불교가 교육이라든지 병원 등의 사회복지 시설 운영에서 기독교에 자리를 내준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한다. 이것은 자연적인 추세라고 보아야 한다.

기독교는 서양을 배경으로 삼고 있고 서양은 지금 세계를 주도하고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해방 이후 이승만 박사가 기독교였고, 장면 박사가 천주교, 윤보선 대통령 역시 기독교로서 선교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거기다 학교를 많이 세워 인재를 수없이 양성했다. 거기에 비한다면 불교가 부동산은 많다지만 교육기관은 동국대 하나뿐이다. 더구나 사람의 심리란 새것을 좋아해서 이미 유교나 불교는 낡았다고 생각하고 모여들지 않는다. 거기다 기독교의 조직력은 놀라울 정도다. 불교처럼 매일 우주 바깥에서 오는 얘기나 해가지고는 조직력을 당할 수가 없다.

요즘 사회 일각에서는 불교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다. 하지만 일선에서 고생하는 분들이 있는데 뒷방에 앉아 비판만 한다는 것은 곤란하다.

양나라 무제武帝 때 불교가 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부의 승과僧科 덕분이었다. 당시 스님이 되는 과거 시험이 얼마나 어렵던지 당대의 수재가 아니고는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스님이 되겠다고 고시공부를 준비하는 학생에게 불교 경전 4백 페이지를 외우게 했다.

그러다 보니 합격하는 순간부터 사회의 인재나 엘리트로 대우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두 스님이 되려고 했고, 그것이 젊은이들의 꿈이었으니 융성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머지않아 이 땅에 불교의 전성기가 다시 올 것이다. 이것은 내 개인적 관측도 있지만 수백 년 전 선배들의 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5백 년 전 무학 스님은 종묘에 창엽문蒼葉門이라고 현판을 써 이조李朝가 28대로 그칠 것이란 예언을 했다. 그분의 말에 따르면 “고려 왕씨王氏는 불교를 스승 대접했지만 새로 올 이씨 왕조는 종 취급을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뒤에 올 계룡산 정씨 8백 년은 아비 대접하리라”고 되어 있는 것만 보아도 불교의 장래는 밝다고 하겠다.

그러나 그 전에 불교인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 어느 시대에도 그러했지만 가장 먼저 자가 정립自家定立이 되어야 한다. ‘자가自家’라는 말의 뜻은 자기를 지칭하는 말이다.

지위가 없는 것을 탓하지 않고 어느 위치에 자기를 맡기든 그것을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가를 심사숙고해야 한다.

높은 벼슬자리에 못 앉는 것을 한탄하지 말고 그 자리를 천거해 준다면 어떻게 운용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알아 줄 진실을 지니고 있다면 스스로 쌓아 놓은 것이 있으니 그대로 알려지게 마련이다. 동양의 3대 성인이라면 석가, 공자, 노자를 꼽을 수 있는데, 이들이 지금까지도 이름을 높이 떨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지금 이 시점에서 불교인들이 할 일은 자가 정립뿐이다. 자기가 먼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스스로 바로 서 있지 않은데 누구를 선도할 수 있겠는가.

물속에 빠진 사람이 무슨 정신으로 다른 사람을 구할 수 있겠는가. 제 몸뚱이가 삐뚤어져 있는 것을 모르고서는 제 그림자를 바르게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소위 자선사업이라고 하는 이타利他만 해도 종교적 신앙이 철저하지 못하면 오히려 죄악을 저지르게 되기 쉽다. 본래 자리自利가 철저할 때에만 참다운 이타가 가능하다. 물에 빠진 사람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자리自利도 못하는 사람이 이타행利他行에 나선다는 것은 위선이다.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스스로에게 충실하지 못한 채 남을 돕겠다고 나서는 것은 허위와 위선임이 각종 자선사업 현장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인간 본연의 도덕을 파괴하고는 정치·경제·문화가 창조될 수도 없고 그 질서를 유지할 수도 없다.

《장자莊子》의 응제왕應帝王 편 한 구절을 살펴보자.

숙焂·홀忽·혼돈混沌이라는 세 명의 임금이 각각 남해와 북해, 중앙에서 통치를 하고 있는데, 언젠가 숙과 홀이 혼돈을 찾아가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두 임금은 혼돈의 대접에 답하고자 궁리한 끝에 자기들은 눈·코·입 등 7개의 구멍을 몸에 갖고 있는데 혼돈은 없으니 그에게도 구멍을 뚫어 줘 인간의 향락을 누리게 하자고 의견을 내었다. 그래서 두 임금이 매일 하나씩 혼돈의 몸에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그러나 7일째 되던 날 혼돈은 죽고 말았다.

이는 약삭빠른 인위적 지혜를 가진 숙과 홀이 우주 본체의 자연으로 인간에게 무한한 호의를 베푼 혼돈에게 수정을 가하다 실패했다는 이야기다.

도가 상실되어 가는 과정을 우화적으로 설명한 《장자》의 이 구절은 오늘의 인간 사회에 심각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