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義問答 序
孔子가 曰書不盡言이요 言不盡意라하시니 此는 十三經之作이 出於聖賢之不得已者也니라 雖然이나 聖賢之學은 心性而已라 雖有千言萬語之不同이나 而究其歸則不過曰 格物ㆍ致知ㆍ博文ㆍ約禮ㆍ博學ㆍ篤行一貫忠恕之道而已니라
自然而知之者는 聖人也요 勉然而知之者는 賢人也요 自蔽自昧而不肯知之者는 愚不肖者也라 雖有智愚之差殊나 而人能反身而誠하고 强恕而行이면 自然虛而靈하고 寂而妙하야
乎無內하며 浩浩乎無外하리니 此는 聖凡之所以一理同體而人皆以爲堯舜者가 以此也니라 然而天下之人이 志輪焉하며 志
而
焉하며 志巫醫而巫焉하야 輪
無醫는 遍於天下호대 求聖人之學者는 間數百年而不一二見하니 爲其事之難歟아 亦其志之難歟아 弗志其事 而能有成者를 吾亦未之見也로다
今琅玗齋朴先生은 生於朝鮮正宗代하야 與世異好하고獨陪黃卷聖賢하야 其於十三經之同異得失處에 條分而縷析하야 使披經者로 渙然氷釋하고 怡然理順하니 可謂求聖人之學而有成者也로다 沈君伯綱甫가 又愍其文之艱澁而難解하야 數年前에 使之譯出하야 庶不滯夫文脈하고 而直得乎本旨케하니 當此舊學問墜地之時하야 可謂火中蓮也로다 世之求聖人之學者가 因譯文而 通問答而經義하야 豁然有得於言外之旨則 孔子之微意와 與千聖不傳之秘가 庶幾復現於天下而亦不負今日
勞之功也리라
戊午(1978) 二月 일
樞星峰下 呑虛宅成 識
경의문답 서
공자가 말하기를 “글로서은 말을 다할 수 없고 말로서은 그 뜻을 다할 수 없다.” 하니, 이는 13경의 저술이 성현의 부득이한 데에서 나온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성현의 학문이란 마음과 성품일 뿐이다. 천마디 만마디 말이 각각 다르지만 그 자취를 살펴보면 격물치지(格物致知), 박문약례(博文約禮), 박학독행(博學篤行), 일관(一貫), 충서(忠恕)의 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를 자연스럽게 아는 자는 성인이요, 힘써서 아는 자는 현인이요, 스스로 가리고 스스로 혼미함으로써 기꺼이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고 어질지 못한 자이다. 지혜로움과 어리석음의 차이가 있으나 자신을 돌이켜 진실하게 하고 힘껏 서(恕)를 행하면 저절로 마음이 비워지고 신령하며 고요하고 오묘하여 지극하고 지극하여 안이 없고 드넓고 드넓어서 바깥이 없으리니, 이는 성인과 범인이 하나의 이치로서 사람마다 모두가 요순이 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의 사람이 바퀴를 만드는 데 뜻을 두면 바퀴가 만들어 지고, 갖옷을 만드는 데에 뜻을 두면 갖옷이 만들어 지고 무당과 의원에 뜻을 두면 무당과 의원이 되는 것이다. 바퀴와 갖옷을 만든 사람과 무당과 의원들은 천하에 가득하지만 성인의 학문을 구하는 자는 수 백 년 동안에 한 두 명도 찾아 볼 수 없다, 이는 그 뜻을 구하기가 어려운 것일까? 또한 그 뜻을 세우기가 어려운 까닭일까? 그 일에 뜻을 두지 않고서 성취하는 사람을 일찍이 보지 못하였다.
오늘날 낭간재(琅
齋) 박선생은 조선 정종조에 태어나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과 달리 홀로 한 권의 성현을 모시고서 13경의 같은 점과 다른 점, 옳은 곳과 잘못된 부분에 대하여 조목별로 나누고 자세히 분석하여 경전을 보는 이로 하여금 얼음이 풀리듯 의심이 사라지고 기쁜 마음으로 이치에 막힘이 없게 해주었다, 성인의 학문을 추구하여 성취한 자라 말할만하다.
심백강이 그 문장이 쉽지 않아서 이해하기 어려운 점을 안타깝게 여겨 몇 년 전부터 이를 국역하여 문장에 막힘이 없이 곧바로 본지를 알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오늘날 옛 한문학이 땅에 떨어진 시대를 당하여 이러한 국역은 불 속에 피어난 한송이 연꽃이라 하겠다.
세상에 성인의 학문을 추구하는 학자들이 국역본으로 인하여 문답을 통하여 말 밖의 뜻을 깨달으면 공자의 은미(隱微)한 뜻과 수많은 성인이 전하지 못한 비밀스런 뜻이 다시 천하에 나타나게 되고, 또한 오늘의 노력을 저버림이 없을 것이다.
무오(1978) 2월 일
추성봉 아래에서 오대산인 탄허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