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華嚴經合論 譯解 序
宇宙가 한 法界라면 法界는 宇宙의 核心이다.
法界가 宇宙의 核心이라면 宇宙는 法界의 影像이다.
核심이 影像을 여의지 않고 있다면 影像 그대로가 核心일 것이다.
이렇게 圓融通觀하고 보면 染이니 淨이니 妄이니 眞이니 하는 것이 모두 法界藏心이 아님이 없으니, 或迷ㆍ或悟와 或聖ㆍ或凡은 當人의 用心如何에 있는 것이다.
一切 修多羅中 三藏十二部와 五敎十僧의 法門을 一以貫之한 것은 오직 이 華嚴이니, 百川衆流가 바다로 돌아가고야 만다면 一切敎門은 圓敎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經은 諸佛ㆍ衆生의 平等한 佛性과 本眞한 德用을 바로 보인 것이다. 三世諸佛이 同證하신 바며 十方菩薩이 同修하는 바며 大千聖衆이 同尊하는 바며 一切衆生이 同具한 바다.
그러므로 「大方廣」三字는 一心三德ㆍ三德一心의 道理가 箇箇圓成하고 人人本具함을 밝힌 것이라면, 「佛華嚴」 三字는 覺行互嚴ㆍ性修不二의 法則이 一念圓證에 當處現前함을 表한 것이다.
또 「大方廣」이 所證의 法이라면, 「佛華嚴」은 能證의 人이다. 所證이 本智라면 能證은 妙行이다. 本智는 곧 平等佛性이요 妙行은 곧 本眞德用이니, 대개 百慮而一致요 殊途而同歸인 것이다.
이 經은 十會四十品을 總括해 말하면 三周因果와 二種常道에 不過하다.
三周因果와 二種常道는 五位法門에 벗어나지 않으며, 五位法門은 十波羅蜜에 벗어나지 않으며, 十波羅蜜은 四無量心에 벗어나지 않으며, 四無量心은 悲智에 벗어나지 않으며, 悲智는 普光明智에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佛陀의 自分인 五位因果와 菩薩의 進修하는 五位因果와 善財의 南遊한 五位因果가 모두 一時ㆍ一際ㆍ一眞法界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이 冊은 二十餘年前 五臺山 修道院에서 修道生의 敎材로 쓰기 爲하여 엮어 놓은 것이다. 執筆한지 近十年에 걸쳐 脫稿를 보게 되었다.
八十卷經에 通玄의 四十卷論을 正으로 하고 淸凉의 百五十卷疏초를 助로 했다. 華嚴의 宗旨는 論으로 하고 字句의 解釋은 疏로 하면 거의 大經을 一塵에 剖折하고 法界를 彈指에 볼 수 있을 것이다.
經의 功德을 말하면 昔에 王明幹이 暫時 四句偈를 持誦하고도 地獄苦에 벗어났거든 하물며 全經을 受持함이랴.
滄海로 먹을 삼고 須彌로 붓을 하여도 一句의 義를 다하지 못하거든 하물며 淺近한 識見과 世間의 紙筆로 그 곤奧를 探究할 수 있으랴!
이 역해는 文法紹계를 主로 하여 經은 經대로 論은 論대로 했을 뿐이요 秋毫도 私意가 介在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經論校正에 있어서는 高麗藏經을 主로 하여 文法上 便宜를 좇아 改正하였고 依據없는 곳은 一字一句도 망령되이 加損치 않았다.
이 原稿가 오랜만에 滿二年을 걸친 寫植으로 造版과 製版을 보게 된 것은 오직 釜山 海雲臺 觀光호텔 社長 金鎭善氏와 蔚山市 朴圓滿性 女史의 出資로 因해 된 것이다. 그리고 紙代는 金美姬ㆍ朴草堂ㆍ李妙蓮華 女史 등의 直接間接의 힘이 많았으며, 印刷로부터 製冊에 이르기 까지는 融資와 先拂豫約金으로 하게 된 것이다.
印經功德의 十大利益은 昔人이 이미 말한 바 있거니와, 이를 契機로 裵休의 逐機頓과 같이 된다면 어찌 火中蓮이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이 經이 流布하여 新羅佛敎의 花郞道와 같이 三千萬大衆에 精神武裝이 되어 南北問題는 勿論이요 나아가서 宇宙가 法界化한다면 나의 願이 滿足이라 하겠다.
만일 微塵의 千卷을 剖折하고 大藏을 空中에 쓰는 저 智者와 明眼人이 본다면 응당 打罵와 叱笑를 免치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를 回避하지 않고 敢行한 것은 初學者의 硏究途上에 或 望梅止渴의 一助가 될까 하여 한 것이다.
그러면 저 微塵의 千卷과 空中의 大藏은 果然 어떠한 것인가, 良久해 이르되 數條綠水는 岩前去요 一片白雲은 山外飛라 하겠다. 
應化 三千二年(1975) 乙卯 五月 五日
大圓庵에서 呑虛는 씀
신화엄경합론역해 서
우주가 하나의 법계(法界)라면 법계는 우주의 핵심이다. 그리고 법계가 우주의 핵심이라면 우주는 법계의 영상(影像)이다. 핵심이 영상을 여이지 않으면 영상 그대로가 핵심일 것이다. 이렇게 원만하게 전체를 관(觀)하면 더러움이니 깨끗함이니 거짓이니 참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법계장심(法界藏心)이 아님이 없을 것이니, 혼미와 깨달음, 성인과 범부는 그 사람이 어떻게 마음을 쓰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일체수다라(一切修多羅) 가운데 삼장십이부(三藏十二部)와 오교십승(五敎十乘)의 법문을 하나로 관통한 것은 오직 이『화엄경』이다. 수많은 시내와 물줄기들이 결국 바다로 돌아가는 것을 볼 때 모든 교문(敎門)은 원교(圓敎)로 귀결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화엄경』은 부처님과 중생의 평등한 불성(佛性)과 근본 참다운 덕용(德用)을 곧바로 보여준 것이다.
그러므로 ‘대방광(大方廣)’ 세 글자는 하나의 마음에 세 가지의 덕, 세 가지의 덕에 하나의 마음의 도리가 개인마다 원만하게 이루어져 있고 사람마다 본래 갖추고 있음을 밝힌 것이라면 ‘불화엄(佛華嚴)’ 세 글자는 각(覺)과 행(行)이 모두 장엄하고 성불과 수행이 둘이 아닌 법칙이 한 생각을 원만하게 깨달음에 그 자리에서 곧 나타남을 나타낸 것이다.
또 ‘대방광(大方廣)’이 소증(所證)의 법이라면 ‘불화엄(佛華嚴)’은 능증(能證)의 사람이다. 소증(所證)이 근본 지혜라면 능증(能證)은 오묘한 행실이다. 근본 지혜는 곧 평등한 불성이요 오묘한 행실은 곧 근본 참다운 덕용(德用)이니, 대개 모든 생각이 하나로 이뤄지고 길은 다르지만 한 곳으로 귀결되어진 것이다.
『화엄경』의 10회(會) 40품(品)을 총괄하여 말하면 삼주인과(三周因果)와 이종상도(二種常道)에 지나지 않는다. 삼주인과와 이종상도는 오위법문(五位法門)에 벗어나지 않으며, 오위법문은 십파라밀(十波羅蜜)에 벗어나지 않으며, 십바라밀은 사무양심(四無量心)에 벗어나지 않으며, 사무량심은 비지(悲智)에 벗어나지 않으며, 비지(悲智)는 보광명지(普光明智)에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불타의 스스로의 본분인 오위인과(五位因果)와 보살의 진수(進修)하는 오위인과(五位因果)와 선재(善財)의 남유(南遊)한 오위인과(五位因果)가 모두 일시(一時), 일제(一際), 일진법계(一眞法界)가 되는 것이다.
이 책은 20여 년 전 오대산 수도원(修道院)에서 수도생의 교재로 쓰기 위하여 엮어 놓은 것이다. 집필한 지 근 십년에 걸쳐 탈고를 보게 되었다.
80권 『화엄경』에 40권 통현논(通玄論)을 주로 하고 150권 청량소초(淸凉疏초)를 보조로 하였다. 『화엄경』의 종지는 통현논으로, 자구의 해석은 청량소로 읽으면 거의 큰 경문을 하나의 티끌까지도 분석하고 법계(法界)를 손가락을 한번 퉁기는 사이에 볼 수 있을 것이다.
『화엄경』의 공덕으로 말하면 옛적에 왕명간(王明幹)이 잠시 사구게(四句偈)를 외운것만으로도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하물며 전체 경전을 읽으면 오즉 하겠는가.
바닷물로 먹물울 삼고 수미산으로 붓을 삼아도 한 구절의 뜻을 다할 수 없는데 하물며 얕은 식견과 세간의 지필(紙筆)로 그 심오한 경지를 탐구할 수 있겠는가. 이 번역문은 문법소개를 주로 하여 경문은 경문대로 논(論)은 논(論)대로 따라서 썼을뿐, 털끝만큼도 나의 뜻을 덧붙이지 않았다. 경논(經論) 교정에 있어서는 고려대장경을 주로 하되 문법상 편의를 따라 개정하였고 근거가 없는 곳은 한 글자 한 구절도 부질없이 더하거나 빼지 않았다.
이 원고가 오랫동안 만 2년에 걸친 사식(寫植)으로 조판과 재판을 보게 된 것은 오직 부산 김진선(金鎭善)씨와 울산 박원만성(朴圓滿性) 여사의 출자로 인한 것이다. 그리고 지대(紙代)는 김미희(金美姬), 박초당(朴草堂), 이묘련화(李妙蓮華) 여사 등의 직접간접의 힘이 많았으며, 인쇄로부터 제책에 이르기 까지는 융자와 선불예약금으로 마련된 것이다.
인경공덕(印經功德)의 십대이익(十大利益)은 옛사람이 이미 말한 바 있지만 이를 계기로 배휴(裴休)의 축기돈(逐機頓)과 같이 된다면 어찌 화중연(火中蓮)이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이 『화엄경』이 유포되어 신라불교의 화랑도와 같이 삼천만 대중이 정신무장이 되어 남북문제는 물론이요 나아가서 우주가 법계화(法界化)한다면 나의 원이 만족하다 하겠다.
만일 미진(微塵)의 천 권을 분석하고 대장경을 공중에 쓰는 지혜로운 이와 눈 밝은 이가 본다면 꾸지람과 비웃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를 회피하지 않고 감행한 것은 처음 배우는 이가 연구하는 길에 혹시 매실을 바라보고 목마름이 가시는데 작은 도움이 될까해서이다. 그렇다면 저 미진(微塵)의 천 권과 대장경을 공중에 쓰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한참동안 말이 없다가 이르되 “몇 줄기 푸른 물은 바위 앞으로 흘러가고 한 조각 하얀 구름은 산등성에 난다.”고 하겠다.돌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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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3002년(1975) 을묘 5월 5일 대원암에서 탄허는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