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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岩宗師 呑虛回信 

細讀來書하니 足見向道之誠也라 年壯氣豪하야 作業이 不識好惡之時에 能立丈夫志하야 欲學無上道하니 非宿植善根之深이면 焉能如是리오 多賀多賀하노라 然이나 道本天眞하며 亦無方所하야 實無可學이라 若情存學道하면 却成迷道하거니 只在當人의 一念眞實而已니라 且孰不知道리요마는 知而不行故로 道自遠人하나니라

昔에 白樂天이 問道於鳥禪師한데 師曰諸惡을 莫作하고 衆善을 奉行이니라 天이 曰三歲小兒라도 亦能說得이니이다 師曰三歲小兒雖說得이나 八十老人行不得이라하시니 此語雖似淺近이나 然이나 介中에 自有深妙道理則深妙를 元不離於淺近中做將去也라

不必棄鬧求靜하고 棄俗向眞이니라 每求靜於鬧하고 尋眞於俗하야 求之尋之하야 到無可求無可尋之處則自然鬧不是鬧요 靜不是靜이며 俗不是俗이요 眞不是眞이라 地折曝地斷矣니라 到恁時하야 喚甚道오 是可謂一人이 傳虛에 萬人이 傳實而니라 然이나 切忌錯會니다 一笑하니라

한암종사 탄허회신 

보내온 글을 자세히 읽어보니, 도에 향하는 정성을 족(足)히 보겠노라. 장년(壯年)의 호걸스러운 기운이 넘처서 업(業)을 지음에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도 모를 때에, 장부(丈夫)의 뜻을 능(能)히 세워 위없는(無上) 도를 배우고자 하니, 숙세(宿世)에 심은 선근(善根)이 깊지 않으면 어찌 능히 이와 같으리오. 축하하고 축하하노라!
그러나 도(道)란 본래 천진(天眞)하고 또한 방소(方所)가 없어서 실로 가히 배울 수 없음이라. 만일 도를 배운다는 생각이 있다면 문득 도를 미(迷)함이 되나니, 다만 그 사람의 한 생각이 진실함에 있을뿐이다.

또한 누가 도를 모르리오마는 알면서도 실천을 하지 않으므로 스스로 멀어지게 되나니라. 옛적에 백낙천(白樂天)이 조과(鳥)선사에게 도를 물으니, 선사(禪師)가 이르기를「모든 나쁜짓을 하지 말고 착한 것을 행하라」하니까, 천(天)이 이르되 「그런 말은 세 살 먹은 애기라도 할 수 있는 말입니다」선사가 바로 이르되「세 살 먹은 애기라도 말은 비록 할 수 있지만, 팔십먹은 노인이라도 실천(實踐)하기는 어렵다」하니, 이 말이 비록 얕고 가까운 것 같으나 그 중에는 깊고 오묘한 도리가 있으니, 깊고 오묘함은 얕고 가까움을 여이지 않고 공부해 들어가야 한다. 반드시 시끄럽다고 고요한 곳을 구(求)하거나 속(俗)됨을 버리고 참(眞)됨을 향하지 말지니라.

매양 고요함을 시끄러운데서 구하고, 참됨을 속됨속에서 찾을 것이니, 구하고 찾아서 가히 구하고 찾음 없는데에 도달하면 시끄러움이 시끄러운 것 아니요, 고요함이 고요한 것 아니며, 속됨이 속된 것 아니요, 참됨도 참된 것 아니니, 쬬아 터지고 폭팔해서 부서지듯 깨닫는다. 그러한 시절을 무어라고 말해야 하는가? 이것은 이른바 한 사람이 헛됨을 전함에 만사람들이 진실을 전함이니라. 그러나 간절히 잘못 알지 말지어다. 한번 웃노라.

2. 한암 대종사 답신 

蒙賜書하야 披讀再三하니 好一段文章筆法이라 當此舊學問破壞之時하야 何其文辭之機權意味가 何若是高邁耶아 前書하야 留爲山中之寶藏耳로다 如公之才德은 雖古聖이 出來라도 必贊美不己也而能從事於有若無實無虛하니 孰不景仰其高風哉아 衲素不能於昑而已爲心月이 相照하야 不可以然故로 玆構荒辭而呈하니 行賜一笑焉이니라

보내온 글을 두 번 세 번 읽어보니 참으로 좋은 일단(一段)의 문장(文章)이며 필법(筆法)이라. 구학문(舊學問)이 파괴(破壞)되는 때를 당해서, 그 문장의 기권(機權)과 의미가 어찌 그처럼 고매(高邁)한가, 먼저 보내온 글과 함께 산중(山中)의 보장(寶藏)으로 여기겠노라.

공(公)의 재주와 덕행은 비록 옛성현이 나오더라도 반드시 찬미(讚美)하여 마지않을 것이다. 그리고 능히 있어도 없는 것처럼 가득찻어도 빈것처럼 그런 공부를 하니, 어느 누가 그 고풍(高風)을 경앙(景仰)하지 않겠는가? 나는 평소에 음영(昑)에 능하지 않지만, 이미 마음 달이 서로 비추었으니, 침묵할 수 없기에 몇줄 편지를 구상해서 보내니 받아보고 한번(一笑) 웃어주오.

오대산인 한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