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면 벽암록-2

제2칙 조주지도무난(趙州至道無難)

지극한 도는 광대무변하여 그 한계가 단절하였으므로 그 경지에서 바라보면 천지도 오히려 협소하고, 이처럼 지극한 도는 낱낱의 사물 마다에 명백하게 드러나 밝음과 어두움의 세계를 초월하였으므로 일월성신의 광명도 그 앞에선 일시에 그 빛을 잃게 된다.

이 경지는 모든 차별상을 떠났으므로 설사 주장자를 비오듯 휘두르고 할을 우뢰처럼 한다 해도 그것이 본분향상의 이치엔 전혀 일치하지 못한다.
설사 삼세제불이라 해도 단지 내적으로 자증(自證)하에 자신만이 알 뿐이며, 역대조사도 그 경지를 겉치레 형식을 빌려 전체로 이끌어내진 못한다. 내지는 부처님 일대장교의 논리도 그 곳엔 도달하지 못하며, 천하의 눈 밝은 납승도 자신을 구제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령 여러분이 이 경지에 이른다면 어떻게 법문을 청하겠는가. 지극한 도는 부처라 말해도 안되고, 참선이라 부른다 해도 그 모든 임시적 명칭은 전혀 해당이 없다.

오랫동안 참구한 최상의 납자라면 그 경지를 굳이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만, 후학 초기라면 지금 이 자리에서 바로 참구해야만 하리니, 이 같은 지극한 도를 전체로 체득한 조주스님의 법문을 살펴보도록 하라.

삼조승찬대사(三祖僧贊大師)는 신심명(信心銘)에서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나 단지 언어에서 간택하는 것만을 꺼릴 뿐이니, 단지 증오와 탐애로 간택하는 마음만 없다면 바로 훤출하게 명백하리라(至道無難 惟嫌揀擇 但莫憎愛 洞然明白)”한 말을 들어 법문하기를 좋아하였다.

조주스님은 평소에 이 말씀을 즐겨 인용하여 “조금이라도 언어로 드러나기만 한다면 그것이 간택이다. 요즘에 참선하는 납자들은 도를 물으면 대체로 언어의 간택 속에 있지 않으면 바로 간택이 단절한 명백 속에 있다. 그러나 노승은 물론 간택 속에 있지 않겠지만 모든 언어의 간택이 끊어진 명백이 따로 있다 여기고 그곳에 안주하지도 않겠다. 여러분은 그 경지를 보호하고 아끼겠느냐?”라고 하였다.

여러분은 말해보라. 조주스님이 이미 명백한 가운데마저도 있지 않다면 조주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명백한 속에 있지도 않다면 조주는 또 무엇이 있길래 여러분들더러 그 경지를 보호하라고 하였겠는가. 생사를 떠나면 그에 상대되는 개념인 열반도 동시에 소멸하여 생사열반, 이 둘을 모두 따로의 모습으로 얻지 못한다. 때문에 고인이 “생사와 열반 이 모두는 헛꽃이라네”라고 노래하였을 것이다.

그 때 대중 속에서 설법을 듣던 어떤 스님이 나와 조주스님의 허점을 재빨리 찌르면서 물었다. “스님, 명백함마저에도 있지 않다면 다시 따로 어떤 물건이 있길래 그것을 보호하라 하십니까?”

이 질문을 받은 조주스님은 방(榜)을 휘두른다든가 할(喝)을 하는 등의 겉치레 형식을 전혀 빌리지 않고 단지 “그 경지는 나도 모른다네”라고 말하였다. 모든 분별이 단절한 경지를 어떻게 상대적인 관점에서 알 수 있겠는가.
여기에서 가령 조주스님의 뛰어난 경지가 아니었다면 허겁지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면서 어찌할 바를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스님은 죽을 사지에서도 바로 되살아나는 자유자재한 솜씨가 있었기에 이같이 여유롭게 답변할 수 있었으리라.

질문했던 스님은 기특하게도 여기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질 않고 다시 바로 말하였다. “스님이 이미 그 경지를 모른다면 무엇 때문에 명백한 곳에 있지도 않겠다 하십니까?”

조주스님은 천하의 대선지식답게 다시 그를 향해 말하였다. “그대가 질문한 일은 옳았다. 예배하고 물러나게나.” 이처럼 여유로운 조주스님 앞에서 질문했던 스님은 더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어 말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조주스님의 이 같은 법문은 대종사의 가풍을 유감없이 드러내면서도 여러분에게 현묘한 이치를 특별하게 의론하지 않고 한결같이 본분사로 사람들을 제접하였을 뿐이다. 때문에 조주스님은 말하기를 “나는 겉치레 형식을 시설하지 않고 단지 본분사로만 사람들을 제접할 뿐이다. 그 뜻을 알지 못하고 시비의 입방아를 찧는 것은 학인의 근성이 둔해서이기 때문이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라고 하였다. 조주스님의 면목이 유난히 돋보이는 대목이며, 천하 노화상이 그를 따르지 못하는 경지이기도 하다. 때문에 그를 두고 “조주스님은 고불의 화현이다”라고 극찬했을 것이다.

조주스님은 평소에 법문하면서 방과 할로 사람을 제접하지 않고 단지 일상적인 평소의 언어를 사용하여 도를 드러냈을 뿐인데도, 천하의 납승들은 그의 자유자재한 솜씨는 감당할 도리가 없었다. 스님은 평소에 단지 망상의 계교가 없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모든 역순경계에서 종횡무진으로 걸림 없는 솜씨를 발휘하면서 전변(轉變)이 자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요즈음 사람들은 이 같은 조주스님의 경지를 전혀 모르고 “조주스님은 답변하지 않았고 단지 모른다고 했을 뿐이며, 따라서 다른 사람을 위해 특별히 설법하지도 않았다”라고 말을 한다. 그러나 그들의 잘못된 견해는 조주스님의 경지에서 천리만리나 빗나갔는데도 캄캄하게 모르고 있을 뿐이다.

설두스님은 조주스님의 법문 귀결점을 알았다. 때문에 송으로 찬탄하기를 “지극한 도, 어려움 없음이여”하고는 바로 뒤따라 “그 말은 분명하기만 하여라”라고 하였다.

이는 조주스님의 법문인 지극한 도는 우주만법 그 자체가 바로 지극한 도의 위치임을 적시하고 있다 하겠다. 즉, 지극한 도를 상대적 관점에서 만법으로 귀결시킨 것이 아니라, 상즉하는 만법이 바로 지극한 도가 전체로 드러난 모습임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삼조승찬대사가 말씀하신 “지극한 도”의 현묘한 종지이기도 하다.

설두는 다시 “하나에 많은 종류 있고 둘에는 둘의 모습 없다”라고 노래하였다. 이 의미를 부연해 본다면 차별적인 많은 만법을 절대보편한 하나의 지도로 귀결시켰다 하겠다. 그 경지는 어떤 사물도 하나의 지극한 도를 떠난 상태에서 차별적인 모습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하나와 많음이 서로가 상대적으로 분리하지 않는 원융한 경지이다. 이를 두고 화엄학에선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 내지는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라고 했을 것이다.

하나의 도에 많은 사물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보편한 지도와 차별적인 만법이 둘인 듯하나 실제로는 따로의 두 모습이 없는 그 경지를 말한 조주스님의 말씀이 참으로 분명하기만 하다는 것이다.

이 경지는 분명한 안목을 갖춘 납자가 아니라면 투철하게 꿰뚫지 못한다. 따라서 이 송의 의미만 분명하게 안다면 내 마음과 세계가 한 덩어리를 이루게 된다. 이 경지를 고인은 “산은 여전히 산이고 물은 그대로 물일 뿐이다”라고 말씀했으리라 여겨진다.

그러나 이 경지에서는 때로는 하늘을 땅이라 부르기도 하고 때로는 대지를 하늘이라고도 말한다. 왜냐하면 모든 차별상이 내 마음과 하나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이 경지에 이르러선 필경 어떻게 해야만 투철하게 깨닫고 끝내 평온함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 경지를 이렇게 비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바람이 부니 나무가 흔들리고 파도를 따라 배도 높이 뜨네. 봄에는 만물이 소생하고 여름에는 성장하고 가을엔 수확하고 겨울엔 간직하는 조작 없는 자연의 이치 그대로일 뿐이다”라고….
이상 네 구절로 본칙 송은 모두 끝났는데도 설두는 여유로운 재능이 있어 다시 노래하기를 “하늘가에서 해가 뜨는 순간 달은 서산에 지고, 난간 앞산이 깊을 때 물도 차가워라”라고 하였다.

목전에 나타난 모든 사물은 그 자체가 내 마음 전체의 진실한 모습이다. 이 경지는 마음과 세계라는 상대적 관점을 동시에 떠난 절대 홀로의 타성일편일 뿐이리라.
설두는 다시 노래한다. “망상이 다한 곳 무슨 기쁨이 따로 있으랴”라고…. 지극한 도는 망상 분별로 알 바 아니며, 망상 때문에 지극한 도가 환하게 드러나진 않는다. 이 같은 8식망상을 타파한다면 그 곳엔 근심이 없는데 근심에 상대되는 기쁨이 어떻게 따로의 모습으로 성립하겠는가.

이는 조사스님들이 말씀하신 “크게 한 번 죽은 사람”의 경계일 것이다. 이처럼 지극한 도를 깨닫는다 해도 그 경지가 따로 있다 여기고 안주한다면 그것도 또 하나의 집착이고 망상일 뿐이다. 때문에 설두는 다시 “고목이 빠짝 마르지 않고 다시 용트림을 하네”라고 노래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수행인들은 고목사회처럼 망상식이 다한 그 곳에서 이것이 진정한 도라고 여기면서 그 곳을 소굴로 삼고 살 궁리를 한다. 그러나 이를 대승의 경지에서 보면 현실 유의세계를 떠나 상대적인 편공(偏空)에 치우친 소승인의 경지며, 그 경지는 아직도 망상의 잔재일 뿐이다.

그러므로 죽은 고목에서 다시 새 생명이 용트림을 하며 살아나듯 크게 한 번 죽은 뒤에 다시 살아나야만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닌 진정한 무주처열반(無住處涅槃)의 경지에 도달한다 하였을 것이다.

이것을 두고 교리적으로는 근본지(根本智)를 체득한 순간 동시에 후득방편지(後得方便智)를 일으켜야만 한량 없는 불사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하였을 것이다. 이 같은 무주처의 세계를 혹은 지극한 도라 하고 또는 중도제일의체(中道第一義諦)라고도 말하는데, 그 곳은 모든 사량분별이 단절하고 언어의 길마저 끊겼다. 때문에 설두스님은 바로 뒤를 이어 “지극한 도는 깨닫기가 어렵고 어렵기만 하구나”라고 하였을 것이다.

도를 배우는 학인이라면 모름지기 스님이 말하는 이 어려운 경지를 통과해야만 진정으로 해탈의 경지를 증득한 자유자재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설두는 다시 “간택과 명백을 그대 스스로 살펴보라”하는 말로 본칙 공안에 대한 송을 끝낸다. 왜 그랬을까. 달마는 불립문자(不立文字)의 경지를 스스로 살피고, 삼조대사는 통연명백(洞然明白)한 경지를 자신이 관조하고, 내지는 천하의 큰스님들이 어느 누구라 해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지극한 도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설두스님은 지극한 도의 경지를 낱낱이 송으로 드러내고 나서 다시 끝에 이르러서 모든 학인들더러 지극한 도를 자신에게서 직접 살피고 증득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야만 설통(說通)과 종통(宗通)을 자유자재로 행할 수 있는 대자유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백장(百丈)스님도 “일체언어나 산하대지를 낱낱이 자기에게 귀결시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이 말씀이 새삼 가슴에 더욱 절실한 의미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