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면 벽암록-3

제3칙 마대사불안(馬大師不安)

종사가 눈을 깜짝이고 주장자를 집어내고 불자를 세우기도 하고, 때로는 한마디 말을 하기도 하여 이로써 학인을 깨우치는 수단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은 본분향상사(本分向上事)에서 보면 멀쩡한 살을 깎아 종기를 만드는 일과도 같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본분의 위치에서 차별적인 모습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또 하나의 형식화된 격식이다.

본분사에 무슨 기틀과 경계나 언구가 성립하랴. 이는 모두 제이의문(第二義門)이며, 속제적인 건화문(建化門)의 모습이다.

본분사는 일체차별상을 초월하였다. 따라서 본분대용(本分大用)은 일정한 틀이 없이 그때그때 상황 따라 상대방이 현재 처한 위치에 걸맞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서 종사들은 일정한 틀에 구애받지 않고 단지 본분사로서만 상황 따라서 학인을 제접한다. 이를 통해서 학인들은 향상사(向上事)로 깨달아 들어갈 수 있다.

이 같은 종사의 본분대용이 일정한 틀이 없이 목전에 현전하면 그 경지는 천지까지 뒤덮여 범부의 분별심으론 도무지 그 종적을 따로의 모습으로 찾을 수가 없다. 이 경지에선 세계를 방행(方行)해도 옳고 천지를 파정(把定)해도 옳다.

왜냐하면 종사가 증득한 경지는 진실한 근원을 끝까지 사무쳤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오묘한 작용은 영원히 간직되기 때문이다. 종사의 솜씨는 이처럼 하화중생(下化衆生)을 하는 데 있어서 무장무애하다.

그 때문에 조사스님은 말하길 “본분사에서 위대한 작용이 현전하면 때로는 긍정하고 혹은 부정하여, 살활(殺活)이 모두 걸림없는 해탈을 이룬다”고 하였다. 이 같은 종사의 걸림 없는 행위가 어떻게 어느 한쪽에 고집스럽게 치우침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사람을 제접하는 곳에 이르러선 때로는 외형으로 드러난 차별적인 형식이나 또는 모든 차별이 단절한 본분사, 이 둘 모두를 동시에 갖추고 빠뜨리지 않는다. 이것이 진정한 종사의 안목이고 자유자재한 솜씨다.

그 경지에 이르러서는 삼세제불(三世諸佛)이라 할지라도 그 어떤 이름이나 모습을 붙이지 못한다. 여러분은 파정(把定)과 방행(方行), 이 두 길 모두를 떠난 본분자리에서 어떻게 해야만 옳은지를 조심스럽게 한 번 마조대사의 법문을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라.

강서(江西) 지방 마조도일(馬組道一) 대사는 그 문하에서 도를 깨달은 자가 139인이었으며, 각자 일방(一方)에 종사가 되어 교화를 무궁하게 폈다고 한다. 대사가 출현하여 그의 문하에서 오종가풍(五宗家風)이 일어나 달마 선종이 마침내 천하를 휩쓸게 되었다 한다. 대사의 법력은 이처럼 고매하였던 것이다.

대사가 하루는 석문산(石門山) 숲길을 산책하면서 골짜기가 평탄한 것을 살펴보더니 따라온 시자에게 말하였다.

“나의 썩은 몸이 다음 달에 이곳으로 오게 되리라.”
이윽고 병을 보이므로 원주스님이 물었다. 즉 병 문안을 드린 것이다.
“큰스님, 요즈음 존체(尊體)가 어떠하신지요?”

대사는 말하였다.
“일면불월면불(日面佛月面佛)”

그리곤 2월1일에 목욕가부좌하고 여여부동하게 열반하시니, 시호는 대적(大寂)선사, 탑호는 대장엄탑(大莊嚴塔)이라고 하였다.
대사가 여기에서 가령 세속적인 견해로 병에 대한 고뇌만을 답변했다면 어떻게

이같이 광채로운 모습일 수가 있었겠는가. 그는 시자에게 본분향상사로 제접하여 그같이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러분이 가령 이 공안을 알 수 있다면 모든 사물 밖에 홀로 높이 초월하여 적나라한 모습으로 천지에 독보할 수 있겠지만, 그 귀결점을 모른다면 고목처럼 망상이 다한 곳에서 그곳을 소굴로 삼고 살 궁리를 하면서 정작 본분향상사에선 빗나가고 있으리라.

가령 본분소식을 수행하는 사람이 마조대사가 말한 “일면불월면불”을 목전에 마주한다면 모름지기 농사꾼의 소와 배고픈 사람의 밥을 빼앗는 솜씨처럼 뛰어난 안목과 기량이 있어야만 대사가 고구정녕하게 사람을 위했던 곳을 바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부처라는 견해와 법이라는 분별심, 이 모두에 의지하지 않고 대사가 바로 간절하게 여러분을 위해 마음 쓴 곳을 바로 알 수 있으리라.

요즈음 수행하는 사람들은 이 점을 잘 알지 못하고 “이는 대사가 원주스님의 의례적인 병 문안에 대해 일상적으로 대답했을 뿐이다”라고들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잘못된 견해는 대사가 공왕불(空王佛) 이전의 면목을 정면으로 타파하여 이미 천박한 견해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다.

여러분은 말해보라. 마조대사가 이처럼 말씀하신 의도와 그 귀결점은 어디에 있는지를…. 여기에 이르러서는 어떻게 살펴야만 평온할 수 있겠는가.

향상일로(向上一路)는 모든 성인도 실물로 전수하지 못했는데도 학자들은 원숭이가 물 속에 어린 달을 실재의 달인 줄 알고 건지려다 강물에 익사했던 것처럼 모든 학인들도 부질없이 불조(佛祖)의 언어에만 얽매어 분별하고 있을 뿐이다.

“일면불월면불”은 모든 성인들도 실물로 전수하지 못한 언어 이전의 소식이다. 따라서 범부의 어리석은 망상으로 헤아리기 어려운데, 어떻게 그 경지를 기웃거리며 엿볼 수 있겠는가.

설두스님도 “일면불월면불”에 이르러선 그 경지를 송으로 드러내기가 극도로 어려웠다. 그러나 설두스님은 견해가 투철하고 평생동안 쌓은 공부를 끝까지 모두 사용하여 본칙공안에 조심스레 주를 냈다.

여러분이 설두의 경지를 보고 싶다면 다음의 송문이 어떤지를 살펴보도록 하라.
설두는 우선적으로 “일면불월면불이여”하고 본칙공안에 대한 송을 이끌어내곤 문득 “오제삼황(五帝三皇)은 무슨 물건이더냐”고 일갈하였다.

오제삼황은 중국 상고시대의 성군들이다. 그들이 비록 보위에 등극하여 인간세계에선 그 극치까지 도달하였다고 하나 어떻게 “일면불월면불”의 경지와 동일한 경지에서 논할 수 있겠는가. 그 경지는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하는 세계이다. 어떻게 삼황오제가 짝할 수 있으랴고 한 것이다.

송나라 제6대 신종(神宗) 황제 때 대장경을 편찬하는 작업을 하였다. 그때 조정대신들이 설두스님의 송고백칠(頌古百則)에 대해 의론하면서 “이 책의 현묘한 종지는 우리가 헤아릴 바 아니다. 그러나 삼황오제는 우리나라 역대 제왕들의 선조이다. 그런데도 지금 ‘삼황오제는 무슨 물건인가’하고 오만방자하게 말하고 있다. 이처럼 무례한 언사가 실려 있으니 이 책을 대장경에 수록하지 말자”고 했다 한다. 이 구절은 이 같은 웃지 못할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여러분은 말해보라. 설두스님이 “삼황오제는 어떤 물건인가”라고 말한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설두스님은 이 구절로 마대사의 “일면불월면불”의 경지를 정면에서 바로 설파하였다. 이처럼 종사의 걸림 없이 자유자재한 담론은 소소한 세속적인 일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다.

“오제삼황” 일구는 설두스님이 이십 년 간이나 갖은 고초를 겪으며 공부하여 깨달은 경지를 스스로 노래한 것이기도 하다.
때문에 바로 뒤를 이어 “이십 년 간 온갖 고초를 겪으며 그대 때문에 푸른 용의 굴로 몇 번이나 내려갔던가”라고 노래하고 있다.

이 구절에서 “그대”는 “일면불월면불”의 경계를 지칭한다. 이는 설두스님이 필경 마조대사가 말한 “일면불월면불”의 경지를 반드시 증득하고 싶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설두대사는 평소에 수행 견처가 마대사처럼 투철하게 자재하질 못하여 항상 사나운 용의 소굴로 들어가 여의주를 훔치려는 것처럼 마음이 공포스럽고 불안하기만 하였으리라.

옛 큰스님은 비록 자기의 본분사를 이미 밝혔다 해도 아직 미세한 망념이 끝까지 다하지 않으면 설두스님처럼 다시 20년 30년을 고심참담하게 참구하여 끝내는 활달자재한 경지를 반드시 얻고야 말았다 한다.

그 이유는 범부와 성인이라는 이 모든 차별상이 끝까지 끊겨야만 상광현전(常光現前)의 처소에 도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경지에 끝까지 도달하지 못하면 흡사 사나운 용굴로 들어가 여의주를 얻으려는 것처럼 항상 불안하기만 하였다는데, 설두스님이 도를 참구하는 간절한 마음이 이같이 절실하였다.

설두대사는 다시 노래한다.
“괴롭지만 그래도 기술해야지. 눈 밝은 납승은 소홀하지 말게나.”
대체로 참선하는 납승들은 훤출하게 적나라한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채 망상의 소굴 속에서 어정쩡하게 살 궁리를 하면서 그곳을 도(道)라 합리화하고 그대로 안주하는 경향이 있다 한다. 이를 두고 의리선(義理禪), 또는 해오(解悟)의 경지, 또는 상사각(相似覺)이라고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설두스님은 수행인의 이 점이 염려스러웠던 모양이다. 때문에 눈 밝은 납승이라도 소홀히 여기지 말고 자신이 수행한 경지는 다시 주도면밀하게 살펴보라고 말하고 있다. 조사스님이 후학을 위해 고구정녕한 마음을 간절하게 쓰는 대목이기도 하다.
설두스님은 이미 깨달은 뒤, 본칙공안에 의심이 풀리지 않아 다시 이십 년 세월동안 갖은 고초를 겪고 나서야 마침내 확철대오의 경지에 이르렀을 만큼 마조대사가 말한 “일면불월면불”의 경지는 높고 드높기만 하다.

여기에 이르러선 설사 정문(頂門)에 안목을 갖추고 몸을 보호하는 호신부를 지닌 자가 온 천하를 타파했다 해도 다시 한번 자신에게 부족한 점이 없는지를 점검하고 조금이라도 소홀히 넘기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숨이 끊겼다 다시 소생하여 그대를 속일 수 없는 경지라 할지라도 부득불 이렇게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한 순간인들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모름지기 거듭거듭 자세하게 살펴야만 “일면불월면불”의 경지를 투철하게 깨달을 수 있다는 설두스님의말씀을 쉽사리 지나쳐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