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허선사 유불회통론의 ‘탄(呑)적 가풍’ 연구

- 유교 󰡔중용(中庸)󰡕의 중화론(中和論)과 관련하여 -

문 광(文 光)

탄허 택성(呑虛 宅成, 1913-1983) 선사는 20세기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대선사이자 대강백이자 대석학이었다. 유년시절부터 한학을 수학하고 면암 최익현 선생의 학통을 이어받은 이극종(李克宗)으로부터 유학의 정통코스를 배워 학교 문턱에도 가지 않고 사서삼경과 󰡔주역󰡕에 달통했다. 스님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경서들을 수백 독(讀)하여 마음만 먹으면 책을 통째로 외워댈 수 있었고 기독교 성경까지 한문으로 읽었다고 한다.

20대 초반에 노장(老莊)을 3년간 독학했는데 아무리 파고들어도 해부가 안 되고 선생이 없어서 오대산의 한암(漢巖) 선사와 일면식도 없는 상태에서 3년간 한문 편지를 주고받던 차에 구도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아내에게 잠시 몇 년만 배우고 오겠다고 집을 나선 것이 그대로 입산수도의 길이 되었다고 한다.

22세에 입산하여 상원사 뒷방에서 한암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일대장교의 이력공부를 󰡔전등록󰡕과 󰡔선문염송󰡕의 선어록을 포함하여 7년 만에 마치고 나니 노장사상이 저절로 환히 풀어졌다고 한다. 유교와 불교 사이에서 노장학은 자득(自得)이 된 것인데 노장(老莊)의 문자 밖 소식에 막혀 출가까지 하게 되는 과정에서 스님은 󰡔장자󰡕를 무려 천 독(讀) 했다고 하는 말이 전해져 온다.

훗날 오대산 수도원에서 함석헌이 󰡔장자󰡕 강의를 듣고 감복했다는 소문을 들은 자칭 타칭 국보 양주동은 친한 지식인, 학생 20여 명을 데리고 월정사로 와서 일주일간 󰡔장자󰡕 강의를 듣고는 스님에게 절을 하였다고 한다. 동국대로 돌아온 양주동은 학생들에게 “장자가 다시 돌아와 자신이 쓴 책을 말해도 오대산의 호랑이 탄허는 당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화엄경󰡕을 보고 문리(文理)는 모두 해결이 되었으나 심오한 묘의가 해결되지 않자 한암선사는 참선할 때가 됐다며 화두참선을 권하였으니 그 길로 입선(入禪)하여 공안을 타파하고 대장부 일대사를 해결한다. 이제 책 볼일이 없어졌다고 생각했으나 󰡔화엄경󰡕에 현토하여 출판·보급하라는 스승의 부촉을 받았으니 이것이 뒷날 역경불사와 교육불사의 기나긴 여정의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수행의 과정은 스님이 유(儒)·불(佛)·선(仙) 삼교를 두루 섭렵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는데, 입산할 때 가져온 유교경전과 󰡔주역󰡕, 노장서 등을 상원사에서 열람하는 것을 한암선사는 제지하지 않았으며, 17년간 사제 간에 치열하게 논강하고 탁마했던 열정이 향후 삼교(三敎)의 본질에 대해서 정확히 인식할 수 있게 된 밑거름이 되었다.

이러한 유·불·선 삼교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실참(實參)의 선기(禪機)를 바탕으로 스님은 불교전문강원의 모든 교재들을 번역·출간하게 된다.

그 가운데에도 청담(靑潭) 스님에 의해 한국불교사에서 이차돈 순교 이래 최대불사라는 평을 들었던 󰡔현토역해 신화엄경합론(懸吐譯解 新華嚴經合論)󰡕 47권의 역경불사는 전무후무한 대작불사였다. 15년 세월의 각고 끝에 원고지 10여만 장 분량으로 끝낸 이 화엄불사는 󰡔화엄경(華嚴經)󰡕 80권, 통현장자의 󰡔논(論)󰡕 40권, 청량국사 󰡔소초󰡕 150권, 󰡔현담󰡕 8권, 󰡔화엄요해󰡕 7권, 보조국사 ｢원돈성불론｣ 1권 등을 통합하여 토를 달고 번역·탈고한 화엄학의 집대성으로 혼자 힘으로 이루어 냈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 어려운 한국문화사에 길이 빛날 금자탑이라 할 만하다. 허나 본인은 ‘하루저녁 푹 잠을 자고난 기분’으로 󰡔화엄경󰡕을 원고삼매(原稿三昧) 속에서 써 냈다고 한다.

이러한 선교겸수(禪敎兼修)의 불문(佛門) 수련 바탕위에서 이루어진 문(文)·사(史)·철(哲) 3학과, 유(儒)·불(佛)·선(仙) 3교의 융회는 묘론(妙論)으로 터져 나왔으니 승속을 가리지 않고 무수한 제자들이 그의 회상에서 배출되었다.

스님은 일생동안 매일 인시(寅時)인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참선수행과 역경하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으니 본인의 선필(禪筆)인 “향상일로(向上一路)”를 그대로 대변하는 삶이었다.

탄허선사의 핵심사상은 선지(禪旨)를 바탕으로 한 화엄사상(華嚴思想)이며 여기에 노장(老莊)의 현지(玄旨)와 역학(易學)의 묘도(妙道)를 양익(兩翼)으로 삼아 사사무애(事事無碍) 도리로 회통한 것이라 하겠다. 특히 역학에 밝아 지욱(智旭) 선사의 󰡔주역선해(周易禪解)󰡕와 김일부의 󰡔정역(正易)󰡕에도 정통하여 일생동안 굵직한 예언들을 수차례 적중시켜 세상을 놀라게도 했었다.

논자 역시 탄허선사의 저술을 사숙(私淑)하면서 많은 영감들을 받았고, 풀리지 않는 많은 의문거리들과 유·불·선 삼교의 대지(大旨)를 확립하는데 큰 빚을 진 바 있다. 만약 현존에 계신다면 언제든지 회상으로 달려가서 배울 마음 가득하나 그러하지 못한 한(恨)을 단지 문자법신(文字法身)과 만나는 것으로 대체하고 있다. 스님의 사상체계와 학문세계, 그리고 수행이력에 비추어 볼 때 아직 그에 대한 연구는 상당히 미진해 보이지만 그의 방대한 저술과 법시(法施)에 걸맞은 학계의 후속 연구가 뒤따라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 미발(未發)은 불성(佛性)의 이명(異名)

탄허선사는 지욱선사가 지은 󰡔주역선해(周易禪解)󰡕를 현토완역하고 그 서문에서 중화(中和)와 관련하여 유(儒)·불(佛)·선(仙) 삼교에 무불통지(無不通知)한 ‘오대산 제일구(五臺山 第一句)’답게 다음과 같은 독창적이고도 멋진 일구(一句)를 남겼다.

<1> 중화(中和)란 것은 공공(公公:공정함)의 아버지요, 생생(生生:삶)의 어머니이다. 순순(肫肫:진실한 모습)하여 그 안이 없으며 호호(浩浩:드넓은 모습)하여 그 밖이 없나니 이는 삼교성인(三敎聖人)이 반본환원(返本還源)의 종지(宗旨)로써 보인 것이니라.

또 ｢성곡서(省谷敍)｣에서는 위의 문장을 그대로 쓴 뒤 다음의 문장을 그 밑에 부가하기도 했다.

<2> 옛 성인이 이 중화의 도를 가지고서 때로는 중국에서 울리기도 하고 때로는 서역에서 울리기도 하였다. 이른바 하나의 법 가운데 유가는 뿌리를 심고 도가는 뿌리를 북돋고 불가는 뿌리를 뽑았다는 것이 바로 이를 말한다.

<1>에서 ‘중화(中和)’는 이미 유불선(儒佛仙)의 성인이 공통적으로 종지(宗旨)로 삼는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2>에서는 이러한 ‘중화’의 도가 동양 3국 한자문명권에 국한되지 않고 서방(西方)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대도(大道)의 보편적 진리(眞理)임을 확고히 하였다. ‘중화(中和)’는 삼교의 공통된 ‘뿌리[根]’가 되는데 그것을 심는[植] 것은 유가(儒家)요, 그것을 기르는[培] 것은 도가(道家)요, 그것을 뽑는[拔] 것은 불가(佛家)라 하여 유가, 도가, 불가의 구분은 ‘중화’라는 같은 뿌리를 심느냐, 기르느냐, 뽑느냐 하는 외면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설파하고 있다.

즉, 탄허선사는 이미 유불선 3교가 ‘중화(中和)’라는 하나의 뿌리에 귀일(歸一)하고 있다고 확언하고 있는 것이다. 성철선사에게서 명백했던 유·불의 구획이 거의 보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도덕경선주(道德經選註)󰡕를 현토완역하면서 지은 서문에서는 ‘중화(中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중추사상을 개진하였다.

<3> 소자유(蘇子由)가 이르되 “중(中)이란 것은 불성(佛性)의 이명(異名)이요, 화(和)란 것은 육도(六度)·만행(萬行)의 총목(總目)이라.” 하니 희로애락(喜怒哀樂)의 미발(未發)이 어찌 관묘(觀妙)의 도(道)가 아니며, 발이개중절(發而皆中節)이 어찌 관요(觀徼)의 도(道)가 아니랴. 형이상자(形而上者)가 어찌 상무(常無)의 도가 아니며 형이하자(形而下者)가 어찌 상유(常有)의 도가 아니랴.

흉금에서 터져 나오는 말이 이즈음 되면 공부깨나 했다고 자부하는 식자인(識字人)들은 무릎을 치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옛말에 ‘봉황의 한 깃털만 보고서도 오색영롱한 아름다운 빛을 미루어 알 수 있다.[觀鳳一羽 足以知五彩之成章]’라고 했고, ‘솥 안의 음식 맛보는 데는 고기 한 점이면 충분하다.[嘗鼎味 一臠足矣]’라고 했으니 스님의 고고(高高)한 경지를 대략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

논자가 “중(中)이 불성(佛性)의 다른 이름이며, 화(和)가 육도만행(六度萬行)의 총목”이라는 말을 처음 접했던 것은 8, 9년 전 탄허선사 유불선 동양사상 특강 CD를 들었던 때였다. 늘 중화(中和)에 대한 관심을 흉중에 가지고 있었던 터라 이 대목을 듣는 순간 귀가 확 뚫리는 듯한 청량감을 느꼈다.

소자유(蘇子由)라 함은 소동파(蘇東坡)로 알려진 소식(蘇軾, 자는 子瞻)의 동생 소철(蘇轍)로 역시 당송팔대가의 일인으로 유명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으나 이런 언설을 한 것은 모르고 있었고, 유교의 경전에 대해서 불교의 ‘불성(佛性)’과 ‘육도(六度:6바라밀)’를 가져와 주(注)를 다는 실력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중(中)’을 ‘대본(大本)’으로, ‘화(和)’를 ‘달도(達道)’로 설명하는 유가의 방식보다 훨씬 알기 쉽고 적확(的確)한 주석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불성(佛性)이라 함은 한 생각 일어나기 전 소식인 일심불생(一心不生)의 경지인데 당시 동국대에서 듣고 있던 󰡔육조단경󰡕 수업과 맞물리면서 사그라져 있던 학구열이 갑자기 살아 일어남을 느꼈다. 유교와 불교가 전면에서 만난다는 것이 일단 신기했고 유교의 핵심인 ‘중(中)’이 불교의 핵심인 ‘불성(佛性)’과 전면적으로 조우한다는 사실에 흥분했었다.

그래서 우선 중국서점에 가서 󰡔소철집(蘇轍集)󰡕 전체를 구입했다. 이 구절이 나오는 문장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네 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소철집󰡕 전체를 아무리 뒤져 보아도 “중자 불성지이명, 화자, 육도만행지총목(中者 佛性之異名, 和者 六度萬行之總目)”이란 문장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단지 󰡔난성집(欒城集)󰡕 가운데 ｢역설삼수(易說三首)｣라는 문장에서 “중자, 성지이명야, 성자, 도지소우야(中者, 性之異名也, 性者, 道之所寓也)”라는 구절만 보일 뿐이었다. 비슷한 문장이었지만 분명히 ‘불성(佛性)’이란 말은 없고 ‘성(性)’ 한 글자만 보여서 적잖이 실망했었다. ‘불성(佛性)’이라 한 것과 그저 ‘성(性)’이라고만 한 것은 천지현격이기 때문이다. 근본 내용은 같은 것으로 볼 수 있으나 ‘불(佛)’ 한 글자가 들어있지 않은 것은 유불회통으로 볼 수 있는 근거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포기하고 몇 년 동안 방치한 채 두었다. 과연 공부란 서둘지 말고 마음을 매어둔 채 시간을 길게 보고 시절인연을 기다릴 줄도 알아야 되는가 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소자유(蘇子由)의 문제의 앞 문장의 출처를 찾을 수 있는 한 계기를 만났다.

소자유(蘇子由)의 문장 가운데에는 의외로 재미난 것들이 많아서 무연히 읽어 가던 어느 날 ｢망형자첨단명묘지명(亡兄子瞻端明墓誌銘)｣의 ‘명왈(銘曰)’의 맺음 무렵에 말한 “나를 어루만져 주실 땐 형이셨고 나를 가르쳐주실 땐 스승이셨다.[撫我則兄, 誨我則師.]”라는 말에서 동생 자유가 형인 동파에게 사상적으로 매우 큰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래서 단초를 찾기 위해 󰡔소동파문집󰡕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 노력은 헛되지 않아 다음과 같은 ｢발자유노자해후(跋子由老子解後)｣라는 문장을 만났다.

어제 동생 자유(子由)가 󰡔노자신해(老子新解)󰡕를 부쳐왔는데 다 읽지도 않고서 책을 덮고 감탄했다. 가령 전국시대에 이 책이 있었다면 상앙(商鞅)과 한비(韓非)가 없었을 것이며, 만약 한(漢)나라 초에 이 책이 있었다면 공자와 노자가 하나가 되었을 것이며, 진송지간(晉宋之間)에 이 책이 있었다면 석가와 노자가 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노년에 이처럼 기특함을 보게 되었도다.

동생 소자유가 󰡔노자신해(老子新解)󰡕라는 책을 써서 보내왔는데 그 내용이 공자와 노자와 석가가 모두 하나임을 밝힌 역작이란 말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논자가 열람하고 있던 판본의 󰡔소철집(蘇轍集)󰡕에는 󰡔노자신해(老子新解)󰡕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소자유가 쓴 󰡔노자신해󰡕를 찾아 나섰다. 이 책을 찾아서 읽어보니 책의 말미부분에 ｢제노자도덕경후(題老子道德經後)｣라는 문장 속에 그동안 찾고 찾던 “중자 불성지이명, 화자, 육도만행지총목(中者 佛性之異名, 和者 六度萬行之總目)”이라는 문장이 엄연히 들어있었던 것이다.

탄허선사 같은 이는 워낙 박람강기하고 거침없이 강의하기 때문에 꼼꼼히 출전을 밝혀가면서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그 말을 한 사람의 이름정도 거론하는 것으로 그쳤다. 하지만 그 말이 나온 전후맥락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이와 같이 길고 긴 여정을 찾아 헤매야 했다. 그때만 해도 󰡔사고전서(四庫全書)󰡕의 검색이나 데이터 베이스가 지금만큼 훌륭하지도 못했었다. 탄허선사의 강맥을 이은 각성(覺性) 스님의 󰡔중용직지(中庸直指)󰡕에도 소자유의 위의 구절을 언급하기만 하는 것으로 보아 스님의 강의를 통해 들은 것 외에 더 첨가된 말은 없었다.

본 장에서 논하고 있는 주제는 탄허선사가 ‘유교의 미발지중(未發之中)을 불교의 불성(佛性)의 다른 이름’으로 읽어 냈던 소자유의 언명을 전적으로 수용하여 자신의 유불회통(儒佛會通)의 근거로 삼고 있다는 것을 논증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문장의 출처를 명확히 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이를 위해 수년간의 신고(辛苦) 끝에 출전을 찾았다. 그래서 여기에 ｢제노자도덕경후(題老子道德經後)｣의 전문(全文)을 번역해 실음으로써 맥락이 관통되도록 하고자 한다.

내가 42세 때 균(筠) 땅에 귀양을 가서 살았는데 균 땅이 비록 작은 고을이었지만 옛 선찰(禪刹)이 많아서 사방에서 교유하는 스님들이 모여들었다. 도전(道全)이란 스님이 있어서 황벽산에 머물고 있었는데 남공(南公)의 자손이었다. 행실이 고매하고 마음이 상통하였으며 나와 더불어 교유하기를 좋아하여 일찍이 나와 함께 도에 대해서 담소하였는데 내가 그에게 말하길 “그대가 말하는 것은 내가 유가서에서 이미 얻은 것 같습니다.” 하니 도전(道全) 스님이 말하길 “이것은 불법입니다. 유자(儒者)가 어찌 스스로 얻었다고 말합니까.” 했다. 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도를 들은 것을 더럽히고 유자로서 없는 바를 가지고 어찌 억지를 써서 속일 수 있겠소. 생각하건대 진실로 그러한 것이 있으되 세상이 알지 못할 뿐이지요.”라고 말했다. 도전(道全) 스님이 말하길 “유가와 묵가가 서로 상통치 않음은 마치 오랑캐와 한족이 서로 알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그대가 또한 무슨 이유로 그것을 알겠소. 나를 위해 그 대략을 말씀해 보시오.” 했다.

내가 말했다. “공자(孔子)의 손자가 자사(子思)이고, 자사(子思)의 책을 󰡔중용󰡕이라 하며 󰡔중용󰡕에 ‘희로애락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중(中)이라 하고 일어나되 모두 절도에 들어맞는 것을 화(和)라고 한다. 중(中)이라는 것은 천하의 큰 근본이요, 화(和)라고 하는 것은 천하의 통달한 도인 것이다. 중화(中和)에 이르게 되면 천지가 여기에서 자리를 잡고 만물이 여기에서 자라나게 된다.’라는 구절이 있으니, 이것이 불법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생각하건대 나온 말이 달라진 것일 뿐이지요.”

도전(道全)스님이 말했다. “어째서 그렇게 말합니까?” 나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육조대사 말씀에 선(善)도 생각하지 말고 악(惡)도 생각하지 말지니 이러한 때를 당하여 어떤 것이 그대의 본래면목인가 하는 말이 있지요. 육조대사 이래로 사람들 가운데 이 말로써 깨달아 들어간 자가 태반이라, 이른바 불사선 불사악(不思善 不思惡)이라는 것이 곧 희로애락이 미발한 것이니 중(中)은 불성(佛性)의 다른 이름이요, 화(和)는 육도만행(六度萬行)의 총목인 것입니다. 중화(中和)에 이르게 되면 천지 만물이 그 가운데에서 생겨나는 것이니 이것이 불법이 아니고 무엇에 해당하겠습니까.”

도전(道全) 스님이 놀라 기뻐서 “내가 애당초 알지 못했을 따름이니 오늘에서야 비로소 유불(儒佛)이 일법(一法)임을 알았소이다.” 하였다.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않으니 천하에 본래 두 가지 도가 없었습니다.[天下固無二道] 그러나 사람을 다스림에 다름이 있으니 군신과 부자지간에는 예법이 아니면 혼란해집니다. 예법을 알지만 도를 알지 못하면 세상의 속된 유자이니 족히 귀한 바가 아닙니다. 산림에 거하고 나무 열매나 풀을 먹고 산골 물을 마시며 마음속에 지극한 도를 보존하여 비록 사람됨이 하늘의 스승노릇을 할 만하나 그에게 세상을 다스리게 하면 난세가 되어 버리니 옛 성인들이 중도의 마음으로 도를 행하여 세상 법을 훼손치 아니한 연후에 가할 따름인 것입니다.”

도전(道全) 스님이 예를 표하며 “이는 대단한 논변이군요.”라고 하였다. 이때 나는 마침 󰡔노자 도덕경󰡕을 해석하여 한 장씩 해설하여 문득 도전(道全) 스님에게 보여주니 스님은 바로 찬탄하며 모두 부처님 설법이라고 했다. 내가 균 땅에서 5년간 지내다 북쪽으로 돌아온 뒤 스님은 오래지 않아 역시 입적하였으니 벌써 20여년이 지난 일이다. 저 󰡔노자해(老子解)󰡕 역시 간행하게 되어 불법과 합한 것이 있어 그때 그 사람과 더불어 말할 수가 없으니 생각으로라도 도전(道全) 스님을 만나 보여주고자 하는 생각에 노자의 끝에 이렇게 쓰게 되었다.

대관(大觀) 2년[1108년] 12월 초10일에 자유(子由)가 제(題)하다.

위에서 보듯 소자유는 6조 혜능의 대표적인 사상인 ‘불사선 불사악(不思善 不思惡)’을 ‘미발(未發)’로 풀고, ‘중(中)’을 ‘불성(佛性)’으로 새겼으며, ‘중화(中和)’가 곧 ‘불법(佛法)’이 아니고 무엇이겠냐고 강조한다. 그리고 탄허선사가 평소 가장 즐겨 휘호했던 구절 가운데 하나인 ‘천하에 두 도가 없다.[天下無二道]’라는 말과 함께 유불일법(儒佛一法)임을 역설한다.

그러나 한 가지 궁금했던 것은 학문의 세계에 노닐어 본 능문인(能文人)의 경우라면 누구나가 소자유의 ‘중화’에 대한 위의 독특한 주석을 눈여겨 보았을 텐데 왜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가 하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한 데 있었다.

유교의 핵심으로 뽑은 사서(四書)에 불교적 주석을 다는 것을 가장 싫어했을 주자(朱子)가 개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주자독존(朱子獨尊)적인 조선 성리학적 학풍에서는 소자유처럼 ‘중(中)’을 ‘불성지이명(佛性之異名)’으로 푸는 주석을 꺼렸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과연 소동파가 세상을 떠난 지 29년, 소자유가 세상을 떠난 지 18년 만에 태어난 주자에 의해서 이 소자유의 󰡔노자해(老子解)󰡕는 비판받기에 이른다.

주자는 자신의 학문을 정립하기 시작해 가던 37세에 소철의 󰡔노자해(老子解)󰡕를 전면적으로 비판했던 ｢잡학변(雜學辨)｣을 쓰게 된다. 주자 나이 37세 되던 1166년은 중화구설(中和舊說)이 탄생한 때이다. 이 무렵 쓴 ｢잡학변(雜學辨)｣에는 주자가 이전 자신의 유불도 삼교융합적인 견해를 잡학적(雜學的) 경향이었음을 반성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 같은 경향에서 벗어나서 유학과 이단[老佛]의 차이점이 이일분수와 지각론에 있다는 인식에 이르렀던 것이다.

｢잡학변(雜學辨)｣의 내용을 보면, 소식(1036-1101)의 󰡔주역해(周易解)󰡕를 비판한 ｢소씨역해(蘇氏易解)｣, 소철(1039-1112)의 󰡔노자해(老子解)󰡕를 비판한 ｢소황문노자해(蘇黃門老子解)｣, 장구성(張九成, 1092-1159)의 󰡔중용해(中庸解)󰡕를 비판한 ｢장무구중용해(張無垢中庸解)｣, 그리고 여본중(呂本中, 1084-1145)의 󰡔대학해(大學解)󰡕를 비판한 ｢여씨대학해(呂氏大學解)｣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 소식, 소철, 장구성, 여본중 네 사람은 모두 당시 저명한 지식인들이었으며, 유교·불교·도교를 종합하려 했던 삼교융합론자들이었다. 이들 사상에 대한 비판은 주자 스스로 지난날 자신의 잡학적 학문 경향을 스스로 반성하면서 유교와 노불(老佛)을 확실히 분리하고자 한 경향성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나온 것이다. 자신이 유교 일가(一家)로 확실히 전향하게 된 중화설(中和說)의 본격 탐구직후의 사태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해 보면 중화(中和)의 의미망을 소자유의 󰡔노자해(老子解)󰡕와 같은 방식을 통해 풀이한다는 것은 주자가 금기하던 사항임을 알 수 있다.

주자가 소자유의 유불회통적 ‘중화’해석에 대해서 어떠한 심기였는지 살펴보기 위해서 ｢소황문노자해(蘇黃門老子解)｣의 다음 구절들을 살펴보자.

소시랑(蘇侍郞=子由)은 늘그막에 이 책을 위하여 우리 유가를 노자에 합하여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또한 석가와 아울러 미봉하였으니 잘못되었다고 할만하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심히 높고 지극하다고 허여하며 당세에 한 사람도 이를 함께 말할 사람이 없다고 하고, 그의 형 동파공 역시 생각지도 않게 만년에 이를 본 것이 기특하다고 생각하였으니 내가 볼 때에는 그것은 부끄럼이 없는 자라고 할 만하다.

소씨(蘇氏)가 후서(後序)에서 이르기를 육조(六祖)가 이른바 선도 생각하지 않고 악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희로애락이 나지 않은 것이라고 하였다. 나는 생각하기를 성현이 비록 미발(未發)이라고 말은 하였지만 그 선(善)이라는 것은 진실로 존재하지만 악(惡)은 없을 따름이다. 불자(佛子)가 말하는 것과 같은 듯하나 실제로는 다르니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이르되 “대체로 중(中)이라는 것은 불성의 다른 이름이요 화(和)라는 것은 육도·만행의 총목이다.”라고 하였다. 나는 생각하기를 희로애락이 있고 그것이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화(和)라고 하니 화는 천하의 통달한 도이다. 육도만행은 내가 그 이른 바를 알지 못하겠으나, 군신을 상하게 하고 부자를 끊음으로써 인도의 실마리를 크게 금하여 이른바 달도(達道)라고 하니 진실로 이와 같겠는가.

주자도 이 장에서의 주제인 ‘중화’에 대한 소자유의 해석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육조혜능 대사의 ‘불사선 불사악(不思善 不思惡)’으로 희로애락의 미발(未發)을 말할 수 없다고 못 박고 있다. ‘화(和)’를 육도만행(六度萬行)의 총목(總目)으로 보는 것에 대해서도 ‘화(和)’는 달도(達道)인데 군신관계를 상하게 하고 부자관계를 끊고서 어찌 달도(達道)라고 할 수 있냐고 하며 인륜(人倫)의 문제를 꺼내 비판하고 있는데 논리가 그다지 신통치 않고 궁색하다. 희로애락의 감정이 발할 때 절도에 맞게 하는 것이 ‘화(和)’인데 출가한 스님들은 감정의 제대로 된 발현이 출가(出家)를 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근원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논리가 된다.

게다가 ‘천하무이도(天下無二道)’에 대해서도 주자는 이도(二道)가 될 수밖에 없는 경우에도 억지로 하나로 묶으려는 것은 분수(分殊)와 차이(差異)를 무시한 처사라고 비판하고 있다.

반면에 소자유는 ‘화(和)’를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의 6바라밀[六度]의 모든 실천[萬行]으로 보고 있다. 인간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마음속 선악시비가 끊어진 미발의 중(中) 자리에서 희로애락의 정(情)이 발하되 절도에 맞지 않음이 없는 6바라밀이 펼쳐지는데 그 모든 실천의 총목이 바로 ‘화(和)’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달도(達道)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육조대사가 말했듯이 선도 생각하지 않고 악도 생각하지 않는 미발의 마음이야 말로 불성(佛性)의 다른 이름이요, 그것의 제대로 된 발현이야 말로 6바라밀의 보살행의 실천이라는 것이다. 군신·부자간의 관계를 맺지 않으면 6바라밀의 실천행이 불가하다는 것이 주자의 설명이고 석가나 공자나 그 근본성품 자리는 하나라고 설명하는 것이 바로 소자유와 이를 계승한 탄허선사이다.

‘중(中)=불성(佛性)’의 소자유의 도식은 결국 ‘중(中)=성(性)’의 도식이다. 이것이 마뜩치 않았던지 주자는 결국 장횡거(張橫渠)의 뒤를 이은 도남학파(道南學派)인 여여숙(呂與叔), 소계명(蘇季明)의 ‘중즉성(中卽性)’을 바탕으로 한 ‘구중설(求中說)’을 비판하기에 이른다. 즉, 구중설(求中說)은 미발지중(未發之中)을 구하는 것은 천명지성(天命之性)을 구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감정의 미발(未發)을 위한 수행을 중시하게 되는 것이다. 주자가 볼 때엔 구중설은 결국 불교의 참선수행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어쨌든 조선과 한국에서 유학을 공부하던 선비들에게 “중자 불성지이명, 화자 육도만행지총목(中者 佛性之異名, 和者 六度萬行之總目)”이라는 주석은 참으로 만나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구조가 선험적으로 존재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탄허선사가 소자유의 노자주석을 다시 발명하여 ‘중화’에 대한 이러한 불교적 회통의 가능성을 찾아 실마리를 뽑아낸 것은 그의 융회적이고 포용력이 넓은 ‘탄(呑)’적 가풍을 재차 확인하는 증좌가 된다고 할 수 있겠다.

유불회통(儒佛會通)의 사상을 열고자 하는 이에게는 ‘중(中)’을 ‘불성지이명(佛性之異名)’으로 보는 소자유의 관점은 천군만마를 얻은 것임에 틀림없고, 유불분수(儒佛分殊)를 고수하려는 주자의 관점에서는 이것이 참으로 꺼림직스러운 언명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탄허선사는 󰡔중용󰡕에서 말하는 천명(天命)의 성(性)과 미발(未發)의 중(中)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의 저술들에서 추출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고찰할 대상은 스님의 법어집인 󰡔부처님이 계신다면󰡕과 󰡔피안으로 이끄는 사자후󰡕, 그리고 󰡔방산굴법어󰡕가 주된 대상이 될 것이다.

아래에 스님의 저술에 보이는 ‘중화(中和)’와 ‘성(性)’에 관련된 모든 언급들을 집성(集成)해 두었다. 향후 후속연구자들을 위해서 단취(斷取)하지 않고 모두 실어 놓았다. 중복되는 듯이 보이는 언급들이 있지만 이를 통해 그의 확고부동한 ‘중화’와 ‘성’에 대한 입론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4> 제일 도(道)를 잘 밝힌 것이 유교학으로서는 󰡔중용󰡕이올시다. 󰡔대학󰡕은 체계적인 학통 16년 동안 공부하는 과목을 얘기한 것이고, 󰡔중용󰡕은 실제로 도 닦는 법을 얘기한 것입니다. …… 왜 진리를 ‘중(中)’으로 대명사를 썼느냐 그게 묘한 것이올시다. …… 진리의 대명사를 ‘중(中)’이라고 표현한 것은 ‘화(和)’를 겸하지 않으면 진중(眞中)이 못되 희로애락이 발하기 전의 상태를 ‘중(中)’, 희로애락이 발해서 도로 합하는 것을 화(和)라 하겠는데 이 때의 화(和)란 체(體)를 겸한 용(用)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체(體)가 아닌 용(用)은 화(和)라 할 수 없습니다. …… 그러나 체용(體用)이라는 말과 중화(中和)라는 말은 서로 좀 다릅니다. 체용(體用)이라 할 때는 법격화(法格化)시킨 말이고 …… 중화(中和)라고 할 때는 인격화시킨 말입니다. 공부를 해서 마음의 본체를 아는 것이 중화(中和)란 말인데 유교의 중화란 말은 매우 중요한 용어지요. 이 중화의 경지를 불교에서는 ‘대기(大機:마음의 본체)’, ‘대용(大用:본체를 닦아 씀)’이라 합니다.

<5> [부처님이] 49년 동안 그렇게 횡야설수야설(橫也說竪也說) 혀가 닳도록 설법해 놓고서 한 글자도 얘기한 것이 없다고 한 것은 ‘성(性)’자리에 앉아서 하는 얘기입니다. 그 자리의 대명사가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유교에서는 ‘중(中)’이라고 합니다. ‘중’이라는 것은 이 복판이 중이 아닙니다. …… 중이 무엇이냐 하면, 시간·공간이 끊어진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중용󰡕에 한 생각 일어나기 전을 중이라(喜怒哀樂之未發을 謂之中이라)함과 동시에 중이란 것은 천하의 근본, 우주의 핵심체(中也者는 天下之大本也라) 한 것입니다. 또 기독교에서의 하나님이라는 것도 또한 시공이 끊어진 자리가 아니겠습니까? 우주는 시간·공간을 의미하는 것인데 시간·공간이 나기 전 우주가 생기기 전에 앉으신 분이 누구이겠어요. 그분이 우주창조주인 하나님인데 그분이 시간·공간을 만들었어요. 그러니까 ‘성(性)’자리에서 본다면 전부가 그 본체를 가지고 있으므로 누구나 양보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성인에게 즉 예수님이나 부처님이나 공자님한테 양보할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에요. …… 마음을 비우는 자가 바로 ‘성(性)’자리를 각파하여 시공이 끊어진 자리 아니겠습니까?

유교에서 화(和)라는 것은 천하의 달도(達道)라 했습니다(和也者는 天下之達道也라). 즉, 화(和)라는 것은 하루 종일 희노애락애오욕의 칠정을 써도 쓴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中)자리를 깨닫지 못하고는 그렇게 안 되거든요. 도통한 사람이 아니고는 진정한 화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또, 중화의 도를 자기 마음 가운데 성취하면 천지(天地)가 나에게 있고 만물(萬物)이 저절로 길러진다고 한 것입니다(致中和면 天地位焉하며 萬物이 有焉이라).

<6> 심(心)이라고 하면, 성(性)과 정(情)을 합한 명사입니다. ‘성(性)’이라는 것은 나의 한 생각이 일어나기 전, 즉 우주가 미분되기 전을 말합니다. 우리의 한 생각이 일어나기 전이나 몸이 나기 전이나 우주가 생기기 전이나 똑같은 것입니다. 마음의 본체를 ‘성’이라고 할 때 중생이나 부처님이나 성인이나 범부나 똑같다는 말은, ‘성’자리를 가지고 하는 말이지 그냥 덮어놓고 똑같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이 마음의 본체라면 ‘정’은 같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작용입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작용으로 말하자면 한이 없지만 철학적으로 그것을 구별한다면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의 칠정(七情)이 됩니다. 그러나 ‘성’은 칠정이 일어나기 전 진면목(眞面目)이며, 본래 언어·문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지만, 굳이 말한다면, 강령(綱領)의 큰 것으로 불교에서는 사덕(四德)이라고 합니다. 부처님 마음자리에 갖춘 사덕, 즉 진상(眞常)·진락(眞樂)·진아(眞我)·진정(眞淨), 유교에서는 그것을 인의예지(仁義禮智)라고 하는데 범부와 소승은 이 사덕을 거꾸로 봅니다.

<7> 범부는 성체(性體)가 혼연한 우주의 진면목, 시간·공간이 끊어진 이 마음의 본체를 알지 못하고서 밤낮 희노애락애오욕의 칠정에 끌려 다니다 마니까 범부지요. 칠정으로써 일생을 보내는 것이 범부라면, 성(性)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성인(聖人)입니다. 그런데 마음이라 하면, 성(性)과 정(情)을 합한 명사, 즉 체용(體用)을 합해 갖고 있는 것입니다. 성은 본체고, 정은 거기에 일어나는 작용이지요. 정(情)자리에 앉아서 보니까 온갖 차이가 있어서 선한 것도 있고 악한 것도 있고, 잘난 놈도 있고 못난 놈도 있고, 긴 것도 있고 짧은 것도 있고, 흰 것도 있고 검은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자리에서 보면 정에서 일어나는 것과 같은 모든 분별·득실·시비가 다 끊어집니다. 마음은 총체적인 명사인데 마음 자리에서 보면, 성인의 마음, 범부의 마음, 악한 마음, 착한 마음 등의 온갖 마음이 다 있지만, 즉 온갖 것이 다 붙을 수 있지만, ‘성’자리에는 선악 시비의 분별이 붙지 않습니다. 굳이 말을 붙인다면, 유교에서는 지극히 착하다(至善)로, 또 불교에서는 선악이 끊어지고 시간·공간이 끊어진 허영불매(虛靈不昧)한 자리라고 붙일 수 있습니다.

<8> 인간성이나 불성(佛性)이나 다 똑같은 자리인데 어째서 인간성이다, 불성이다, 신성(神性)이다를 구별하느냐 하면, 성인은 알고 쓰기 때문에 불성·신성이라 하고 우리 범부는 성(性)자리를 모르고 쓰기 때문에 인간성(人間性)이 됩니다. 결과적인 면에서는 인간성과 불성이 둘이 아닙니다. 단, 쓰는데 있어서 성인은 성(性)자리에 앉아서 쓰는 것이고 범부는 정(情)자리에 앉아서 쓰는 것이지요. 그러기에 대명사가 ‘중(中)’이라고도 나오고 ‘도(道)’라고도 나오는데 도라는 것은 사람이 당연히 갈 길이라는 말입니다. 또 그것을 덕(德)이라고도 하는데 덕이라는 것은 마음을 닦아 얻은 진리(得於心之謂德) 아닙니까?

또 그것을 진리라고도 하는데 진리라는 것은 모양이 끊어졌다는 말입니다. 온갖 대명사가 다 나오지마는 대명사는 달을 가리키면 달은 안보고 손가락만 봅니다. 결국 대명사란 표현하기 위한 방법이기 때문에 때에 따라서 다른 술어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라는 대명사, ‘중(中)’이라는 대명사, ‘도(道)’라는 대명사, ‘진리’라는 대명사 등 온갖 대명사가 많이 나오지만 때에 따라서 그 대명사가 나오는 것이고, 다만, 그 물건, 즉 성(性)자리 하나를 지적하기 위해서 이렇게 많은 대명사가 나온 것입니다. ……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성이나 불성이나 둘이 없는 것인데 성인은 성자리를 알고 쓰니까 하루 종일 희노애락애오욕의 칠정을 써도 칠정이 도로 없는 데로 돌아갑니다. 우리 범부는 시공이 끊어진 이 성자리를 모르고 쓰니까 항상 망상에 허덕이면서 고해(苦海)에서 났다·빠졌다 하는 것입니다.

<9> 불성(佛性)이라 할 때에 ‘불(佛)’이라는 말은 ‘각(覺)’이라는 뜻입니다. 각(覺)은 미(迷)의 반대말로서 한 생각이 일어난 것이 미(迷)라면, 한 생각 일어나는 곳이 없는 줄 확연히 본 것을 각(覺)이라 합니다. …… 부처님의 각이라는 말은 한 생각 일어나는 당체가 본래 없는 것으로 타파해 버린 것입니다. …… 생각이 일어나고 안 일어남을 자유자재로 하니까 부처님을 각한 왕, 각왕(覺王)이라고 합니다.

<10> 성인도 희로애락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성인은 일어났다가 바로 중(中)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성(誠)이지요. 그러니까 본래 진실해서 망상이 없는 자리는 천도(天道)이며 진실무망 하도록 노력하는 것은 사람의 도(人道)입니다. 그러니 본래 진실무망한 데서 밝아진 것을 성(誠)이라 하고 밝은 자리로부터 밝아져서 진실무망한 것을 교(敎)라 하는 것입니다.

1982년 ‘유불도(儒佛道)의 대가인 탄허 큰스님을 찾아서’라는 대담에서 질문자가 “불교의 공(空)과 유교의 도(道)와 도교의 무(無)는 결국 하나로 연결된다고 볼 수 있겠는데 그 마지막 자리는 어떻게 된다고 보고 계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했다.

<11> 도교의 무(無) 사상만 가지고 물으시고, 불교의 공(空) 사상만 가지고 얘기하시고, 유교에 도(道)자를 붙이셨는데, 그게 어떤 전매특허 술어가 아니올시다. 도(道)라는 말만 하더라도 유불선 삼교에서 서로들 끌어다 쓰고 있어요. 그런데 아까 중화(中和)라는 개념은 유교의 전매특허 술어올시다. …… 그러나 본체는 하나지요.

<12> 이 시공(時空)이 일어나기 전을 유교(儒敎)에서는 통체일태극(統體一太極)이라 하고, 도교(道敎)에서는 천하모(天下母)라고 하고, 기독교(基督敎)에서는 성부(聖父)라 하고, 불교에서는 최초일구자(最初一句子) 또는 최청정법계(最淸淨法界)라 한다. 그러고 보면 기본은 일(一)이다. 일(一)은 무엇일까? 일은 시공(時空)을 만들어낸 현존일념(現存一念)인 것이다. …… 이 자리에서 보면 천겁(千劫)을 지나도 옛이 아니요, 만세(萬世)에 긍(亘)하되 길이 지금인 것이다.

위의 발언들을 통해 탄허선사의 중화(中和)에 대한 담론을 종합적으로 정리해 보자.

우선 유교에서는 도를 가장 잘 밝힌 책이자 실제로 도 닦는 법을 얘기한 책은 󰡔중용󰡕임을 <4>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8>에서는 진리(眞理) 혹은 도(道)를 표현하는 수많은 대명사들은 모두 ‘성(性)자리’ 하나 지적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즉 󰡔중용󰡕 수장(首章)의 제1구인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의 ‘성(性)’ 하나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유가칠서(儒家七書)에 정통하고 출가했다는 공력(功力)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11>에서 보듯 ‘중화(中和)’는 불교의 공(空), 도교의 무(無)처럼 유교를 대표하는 전매특허 술어라고까지 얘기하고 있다.

‘중화(中和)’를 해석하는 스님의 독창성을 여기에서 섬세하게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 <5>에 보면 희로애락(喜怒哀樂)의 미발(未發)을 ‘한 생각 일어나기 전’이라 번역하고, 발하여 절도에 맞는(發而皆中節) 화(和)를 ‘분별없는 자리로 돌아가는 것’, 혹은 ‘하루 종일 희노애락애오욕의 칠정을 써도 쓴 자리가 없는 것’, ‘다시 원래 중(中)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 등으로 번역한다. 이것은 󰡔중용󰡕에 대한 주석의 역사에서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는 해석으로 볼 수 있겠다. 스님의 유불회통사상을 규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중요한 해석학적 지평이 이 말들 속에 담겨 있다.

앞에서 보았듯이 성철선사가 ‘화(和)’를 ‘희로애락이 나서 적당하게 사용하는 것’ 정도로 치부했던 것과는 현저한 차이가 난다. 성철선사는 유가의 ‘중’자체를 망상경계로 보기 때문에 여기에서 발한 ‘화’의 경지를 그리 높게 설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탄허선사는 유가의 ‘중’을 시간과 공간이 끊어진 마음의 본체로 보아 한 생각 일어나기 전 소식인 불성(佛性)과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중’에서 발하여 절도에 맞게 되는 ‘달도’인 ‘화’를 아무리 쓰고 써도 쓴 바가 없고, 쓰고 나면 다시 원래의 ‘중’자리로 돌아오는 것으로 보았다. 불교의 핵심적인 용심처(用心處)인 전기대용(全機大用)을 유가 ‘중화’해석에 직접 적용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즉 유교나 불교나 도교나 모든 공부의 핵심은 ‘중’자리 하나 깨닫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용어상으로 보면 ‘성(性)자리’ 라는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주 생기기 전, 몸이 나기 전, 한 생각 일어나기 전, 언어·문자로 표현이 불가능한 본래면목, 시비분별이 모두 끊어진 알래야 알 수도 없고 모를래야 모를 수도 없는 각(覺)이 바로 이 자리라는 것이다. <5>에서 ‘중’에 대한 󰡔중용󰡕의 대표적 술어인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을 ‘우주의 핵심체’라는 말로 풀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여기에서 나아가 우주창조주, 기독교의 하나님까지도 바로 이 ‘성(性)자리’ 하나 지적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으니 불교에서 말하는 ‘상락아정(常樂我淨)’의 열반사덕(涅槃四德)과 유교의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사단(四端)은 스님의 사상체계 내에서는 당연히 이 ‘중(中)’이라는 말 하나에 통섭(統攝) 되는 것이다.

스님의 법호 ‘탄허(呑虛)’는 허공을 삼켰다는 말인데, 스님은 이 이름을 활용하여 “우주가 내 뱃속에 있으니 내 아들 아닌 사람이 없다.”라고 농담하곤 했다 한다. 이 농담 속에 화엄의 사사무애법계 도리가 그대로 녹아있으니 논자는 여기에서 발명(發明)하여 위와 같이 유불선 삼교를 모두 삼켜 무애자재하게 융회회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