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암 록- 6

제6칙 운문십오일(雲門十五日)

운문문언(雲門文偃)선사는 처음에 목주(睦州)스님을 참례하였다. 목주스님의 솜씨는 전광석화와 같아 그 누구도 그의 경지에 도달하기 어려웠다.
스님은 평소 학인을 제접함에 있어서 누구든 그의 문으로 들어서기만 하면 바로 멱살을 움켜잡고 말하였다.
“말해라. 말해”
상대방이 머뭇거리며 대답을 못하면 그를 바로 문밖으로 밀어내면서 말했다.
“꽉 막힌 놈이군”
이같은 목주스님을 운문은 세 번이나 찾아갔다. 운문이 문을 두드리자, 목주는 말하였다.
“누구요”
“문언입니다”
그리곤 문을 열고 목주에게 잡히기 이전에 바로 팔짝 뛰어 들어갔더니, 목주는 잽싸게 그의 멱살을 움켜지고 말하였다.
“말해라. 말해”
운문이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바로 문 밖으로 밀쳐냈다. 운문의 한쪽 발이 미처 문턱을 빠져나오지 못했는데도 목주는 급히 문을 닫았다. 운문은 발이 문 틈새에 끼어 고통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다가 홀연히 확철대오하였다. 그 뒤로 운문이 학인을 제접하는 말과 솜씨는 한결같이 목주를 쏙 빼 닮았다.
훗날 상서(尙書) 벼슬을 하는 진조(陳操, 목주의 법을 이었음)의 집에서 3년을 머물렀는데, 목주는 그에게 설봉스님을 찾아가라고 하였다.
운문은 설봉의 처소에 당도하여 바로 질문하였다.
“어떤 것이 부처의 경지입니까”
설봉은 말하였다.
“잠꼬대 같은 소리하지 말라”
청천백일에 부처와 조사를 묻다니 이것이 잠꼬대가 아니고 무엇이랴.
운문은 즉시 예배하고 그곳에서 다시 3년을 머물렀다. 설봉이 하루는 질문하였다.
“그대의 견처는 어떠한가”
운문은 말했다.
“저의 견처는 역대 부처님, 조사와 한 털끝만큼도 다르지 않습니다”
영수여민(靈樹如敏, 大安明의 법을 이었음)선사는 20년이 되도록 승당에 수좌(首座)소임을 비워놓고 말하였다.
“우리 수좌 운문이 이제야 태어났군. 우리 수좌가 지금은 출가수행을 하고 있군, 우리 수좌가 지금 행각을 하고 있군”
그러던 중 홀연히 하루는 대중들 더러 종을 치고 절문 밖에 나아가 수좌를 맞이하라 하였다. 그 말을 들은 대중들은 모두 의아하게 여겼는데, 과연 운문이 찾아와 수좌가 머무는 집으로 들어가 보따리를 풀었다. 이처럼 미래를 미리 꿰뚫어보는 영수스님을 가리켜 그 지방 사람들은 지성(智聖), 즉 성인처럼 지혜로운 스님이라고 불렀다. 영수스님은 이처럼 과거와 미래를 모두 알고 있었다. 아마도 스님은 숙명통(宿命通)을 했는 듯도 싶다.
영수스님과 운문의 인연을 대략 말해보자.
운문과 영수스님은 전생에 부처님이 세간에 계실 때 같은 도반으로 열심히 수행했다. 영수스님은 세세생생 보리심을 잃지 않고 수행하여 신통력을 잃지 않았지만 운문은 삼생동안 왕 노릇을 하느라고 세간의 오욕락에 집착했기 때문에 신통을 잃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 법안만은 잃지 않았다.
두 스님의 이같은 인연으로 영수스님이 열반한 뒤 운문은 그곳에 머물게 되었고, 그 뒤에야 소주고을 운문산으로 옮겨 평생 주석하였다 한다.
운문스님은 평소에 세 글자로 선 도리를 말하기 좋아하였다. 고(顧), 감(鑑), 이(咦)가 그것이다. 또 때로는 한 글자로 선의 경지를 말하기도 했는데 그 예를 하나 들어본다면 어떤 스님이 물었다.
“부모를 살해하면 부처님 앞에서 참회할 수 있지만 부처와 조사를 살해하면 어느 곳에서 참회해야만 하겠습니까” 라고 하자 운문의 답변은 “로(露)” 한 글자였다. 이는 당시의 방언인데 전체로 드러난 보편한 세계라는 뜻이다.
운문의 솜씨는 이처럼 상대방이 머뭇거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은 채 곧장 평온한 곳에 도달하게 하였다.
그의 문하에서 사철(四哲) 즉 사대고승이 출현하였는데, 동산초(同山初), 지문관(智門寬), 덕산밀(德山密), 향림원(香林遠)스님이 그들이다. 이들 모두는 일방의 대종사가 되어 선종가풍을 크게 진작하였다.
4대 제자 가운데 유독 향림스님은 운문스님의 시자를 18년간 했다. 운문스님은 그를 부를 때마다 “원시자(遠侍者)야” 하고 이름을 불렀다. 향림이 “네”하고 대답하면 운문은 말했다.
“무엇이 대답을 했느냐.”
이렇게 18년간이나 지내다가 향림이 하루는 그 소식을 깨닫자, 운문은 말했다.
“앞으로는 너의 이름을 부르지 않으리라”
이처럼 운문은 평소 학인을 제접하는데 있어서 그 솜씨가 목주의 가풍을 많이 닮았다. 운문이 하루는 대중에게 법문하였다.
“15일 이전은 여러분께 묻지 않겠다. 앞으로 다가올 15일 이후의 일을 한 구절로 말해보라.”
이같은 운문의 솜씨는 얽히고설킨 차별을 그 자리에서 일도양단하여, 그곳은 성인이다 범부다 하는 차별적인 견해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 이 질문에 대중들이 하나도 답변하질 못하자, 운문은 스스로 대신 말하였다.
“나날이 좋은 날이로다”
운문스님은 이 법문을 통해서 종풍을 수립하여 모든 사람들을 속박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였다.
“나날이 좋은 날”, 이 법문은 고금을 하나의 이치로 관통하여, 과거로부터 미래에 이르기까지 모든 차별을 일시에 절단하였다. 여러분이 이 법문을 꿰뚫는다면 바로 그 자리에서 운문의 진면목을 볼 수 있으리라.
설두의 송을 살피기로 하자.
“하나를 버리고 일곱을 집어내니 상하사유(上下四維)에 짝하리 없네”
무엇이 향상제일구(向上第一句)일까. 여기에서 설두는 그 풍모를 약간 드러내어 모든 사람들이 보게 하였다. 제1구의 경지에서는 단지 위로는 모든 부처라는 견해를, 아래로는 중생의 견해를 일으키지 않아야 하며, 밖으로는 산하대지라는 견해, 안으로는 육식분별, 즉 견문각지(見聞覺知)를 일으키지 않아야만 한다.
마치 크게 죽은 사람이 문득 되살아나듯 한다면 시비장단 호오의 갖가지 분별심이 전체로 한 덩어리를 이루리다. 즉 15일 이전을 버린 순간이 바로 15일 이후가 동시에 다가오는 순간이며, 그곳은 도무지 전후의 차별이 없는 평등일제(平等一際)일 것이다. 그 자리에 무슨 천상천하에 짝하리가 있으랴. 우리나라 의상대사도 법성게에서 구세십세호상즉(九世十世互相卽)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낱낱의 사물들을 집어내는대로 하나의 이치여서 다시는 그에 따른 다르다는 견해가 없어야만 한다. 그런 뒤에 감응하는 지혜 작용이 현실상황에 알맞게 동시에 일어나야만 설두의 송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 수 있으리라.
위의 두 구절에서 그 참 의미를 꿰뚫기만 한다면 바로 천상천하유아독존이 된다. 그 체득한 경지는 삼라만상과 초목, 사람, 축생들까지 그 모든 것에서 자기의 가풍을 착착 전체로 드러내게 된다.
이 소식을 옛 큰 스님을 이같이 노래하고 있다.
“만상 가운데 절대 홀로 드러난 몸 (萬像之中獨露身)
오직 스스로 인정해야만 불조와 친근하리 (惟人自肯乃方親)
지난날 언어문자에서 잘못 찾았더니 (昔日謬向途中覓)
오늘 살펴보니 마치 불속의 얼음 같았던 것을 (今日看來火裏水)
이같은 본분향상의 경지에 어떻게 상대적으로 짝할 자가 있으랴. 학인들이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1과 7이라는 임시언어적인 숫자에 얽매이지 않아야만 15일 이전과 15일 이후가 오감이 없는 근원의 본분이치를 올바로 바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지에서 “서서히 행동할 때 끝없이 질펀하게 흐르는 물소리 모두 밟아 끊고, 시야를 끝까지 넓혀 날으는 새 자취를 본다 해도 이도 역시 근원의 이치가 쏟아낸 모습일 뿐이다” 여기에서는 확탕노탄 검수도산 지옥이라 해도 그것을 타파하는데 있어서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설두는 여기에 이르러서 납자들이 무상무위(無相無爲)의 근원이 따로 있다 여기고 그 속에 할 일 없이 앉아 있을까 염려스러웠다. 때문에 자비심으로 다시 말하였다.
“아래로는 풀이 무성하고 위로는 연하가 자욱하다”
대체로 설두의 의도를 말해본다면 송의 처음과 둘째구절에서 긍정했던 것을 여기에서 다시 뒤엎고 부정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부정이 있는 곳에 동시에 긍정이 있어 살활여탈이 자유자재한 경지일 것이다. 그래야만 학인이 고정된 언어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말해보라. 이는 어떤 사람이 도달한 경계인지를. 이를 두고 “나날이 좋은날이다”라고 하면 옳겠는가.
이 말까지도 근원자리에서 보면 전혀 상관없는 군더더기 일 뿐이다.
이상의 모든 한계있는 언어적 표현은 무상무위의 근원에서 본다면 이도 역시 치우친 견해일 뿐이다. 그것을 마치 수보리가 편공(偏空)에 치우친 선정삼매에 들자 하늘나라에서 그의 한계가 드러난 곳을 엿보고 꽃비를 내렸던 것과도 흡사하다. 때문에 “수보리가 삼매에 든 바위 주변에 꽃비가 낭자하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공(空)이라는 관념이전의 경지로 훤출하게 뛰어넘어야만 비로소 올바른 깨달음의 경지라고 하리라.
수보리 존자가 하루는 바위굴에 앉아 고요하게 삼매에 들었는데, 뜻밖에 하늘이 꽃비를 내리며 찬탄하였다. 존자는 말하였다.
“공중에서 꽃비를 내리며 찬탄하는 자가 누구요”
하늘이 “나는 제석천입니다”라고 하자, 존자는 말하였다.
“그대는 무엇 때문에 나를 찬탄하는가.”
하늘이 “나는 존자께서 반야바라밀다를 설하는 것을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라고 하자, 존자는 말하였다.
“나는 반야바라밀다에서 단 한 글자도 설한 일이 없다. 그런데도 그대는 무엇을 찬탄하는가”
하늘은 말하였다.
“존자는 설해도 설한 일이 없고 저는 들어도 들은 것이 없습니다. 설한 일도 들은 것도 없는 그 경지가 진실한 반야바라밀다 입니다.”
그리고는 다시 꽃비를 내리고 대지를 진동시켰다. 이 구절을 통해서 설두가 말하고 싶었던 의도는 근원 자리에선 그 어떤 언어적 수사라 할지라도 그것은 마치 수보리존자가 한쪽으로 공(空)에 치우치자 그것은 바로 한계점을 드러내 하늘이 즉시 엿보고 꽃비를 내렸듯이 언어의 한계로는 끝내 극치의 도리엔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언어도단 심행처멸(言語道斷 心行處滅)”이라고 흔히들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만 하겠는가. 다음 문장을 살펴보기로 하자.
“한 찰나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순야다같은 수보리가 불쌍하구나”
“순야다”를 번역하면 허공신이다. 이 신은 허공을 몸으로 하므로 따로의 몸이 없고 단지 감촉만 있을 뿐이라 한다. 때문에 부처님 광명이 비춰야만 그 순간 잠시 나타날 수 있을 뿐이라 한다. 그대가 가령 순야다신처럼 된다면 즉 털끝만큼이라도 한계를 엿볼 수 있다면 그것은 본분사에서 이미 천리 만리나 이탈한 것이므로 설두의 정안으로 봤을 땐 순야다처럼 불쌍하기만 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그에 대한 답변을 설두는 다음과 같이 하고 있다.
“꼼짝 마. 움직이면 삼십 방망이다.”
만일 근원본분사에서 한 생각 움직였다하면 그는 멀쩡한 대낮에 눈뜨고 졸고 있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놈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