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禮, 법法, 정情으로 살아가는 삶

소득이 늘어나고 생활수준이 높아졌지만 사람들이 살아가기에는 더욱 팍팍하고 어려운 시대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산문山門에 묻혀 세상물정에 어두운 나에게까지 와서 질문을 쏟아 놓곤 한다.

“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과연 인생은 살 가치가 있는 것입니까?”

이러한 질문은 인간의 오래된 의문이자 영원한 물음이기도 하다.

사람이 사는 것을 크게 구분해 보면 예禮, 법法, 정情 3가지 형태로 살아간다.

이때 예는 천리天理를 말하는데, 이는 세속의 예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예의 삶을 사는 사람을 불가佛家에서는 ‘상근기의 사람’이라고 한다. 이는 대인군자요, 우주와 나, 객관과 주관의 구분을 완전히 잊는 물아양망物我養望의 경지에 오른 삶을 사는 사람이다.

그리고 법으로 사는 삶이란 물아양망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자리自利보다는 이타利他에 치중하면서 세속 법규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이 사는 사람을 말한다. 이를 ‘중근기의 사람’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정으로 사는 사람은 예도 법도 다 모르고 오직 인정人情으로만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인데 한마디로 ‘천치’ 같은 사람들이다.

선조 때 명현名賢 김사계金沙溪의 아들 김집金集 신독재愼獨齋의 이야기를 통해 예, 법, 정으로 살아가는 삶이 어떤 것인지 자세히 살펴보자.

신독재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명현名賢이었다. 사계沙溪의 스승인 율곡의 친구 되는 딸 중에 천치가 있었는데, 신독재 같은 명현 군자가 아니면 데리고 살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 율곡은 신독재와 그 딸을 중매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독재의 장인이 죽자, 사계와 아들 신독재 부자가 며느리의 친정으로 문상을 갔다. 문상 중에 천치 부인이 갑자기 남편 신독재에게 술을 권한 게 아닌가. 그는 잠시 머뭇거림도 없이 순수하게 술잔을 받아 마셨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사계가 크게 노하여 아들을 꾸짖었다.

“문상을 왔으면 정중하게 문상이나 할 것이지 술은 왜 받아 마시는 게냐.”

꾸짖는 아버지에게 신독재가 대답했다.

“정情으로만 사는 천치에게서 남편을 향한 정마저 끊어 버리면 머지않아 폐물이 되고 말 것이니 이를 불쌍히 여겨 받아 마신 것뿐입니다.”

이 말을 듣고 사계는 무릎을 치며 말했다.

“그래, 네 공부가 나보다 낫구나!”

어떤 삶이 잘 사는 삶이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상근기의 삶이 가장 잘 사는 길임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하지만 하근기의 삶이 천치 같은 생활이라면 우리 인간의 대부분이 천치일까?

이에 관해서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적당하겠다. 즉 성인의 문정門庭에서 볼 때 사회적 지식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다 유치원생의 수준이다. 그러나 우리가 상근기의 삶을 추구하며 살아갈 때 그 삶은 좀 더 살아갈 가치가 있고, 인류가 함께 행복해지는 길이 될 것이다.